분류 전체보기 (81) 썸네일형 리스트형 정수기 20.5.6. 동시대를 표방할 수 있는 사물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논할 때 나는 정수기와 건조기를 거론할 수 있다. 오늘은 정수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수기는 1980년대부터 상품화가 되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외국인의 유입과 함께 생수를 사 마시는 것을 관찰하고, 90년대 초 낙동강 페놀 오염 등의 사건을 지켜보며 한국의 식수에 대한 관심은 확대되었다. 90년대 중후반 생인 나의 또래는 정수기가 충분히 보급된 이후에 태어났다. 정수기는 미래주의적 조건을 갖추었으면서도 나름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물이다. 자연을 상품으로 만드는 사물, 전기를 사용해 물을 뽑아내는 기계, 환경오염으로 인해 당연하던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된 상황을 위한 대체제, 적절한 사치성 등 정수기는 미래주의를 표방할 상당 수.. 전주비빔밥 20.5.4. 새로 알게 된 친구 중에 전주에서 온 친구가 있다. 전주에 살면 전주비빔밥 먹어 봤냐고 물어봤다. 한 번도 사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전주에 사는 사람들은 전주비빔밥을 잘 사 먹지 않는다고 한다. 왜 자신들의 명물을 즐기지 않는 것일까. 난 서울에 살면서 경복궁을 한 달에 한 번씩은 간다. 그냥 산책하러 간다. 그러나 이 친구는 전주 한옥마을조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 곳에 왜 가냐는 듯이 말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남산타워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옛말에 집 근처에 있는 곳은 쳐다도 안 본다는 말이 있듯이 집 근처의 명물은 잘 즐기지 않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가 보다. 하지만 난 서울의 맛있는 곳들에 관심이 많고, 그 맛집들을 즐긴다. 나의 기준에서는 맛있는 음식은 맛있는 음식일 .. 녹차 20.5.3. 접근성은 사물의 이차 심상을 결정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사물의 존재를 아는 순간 발생하는 심상을 일차 심상이라 할 때, 일차적 심상을 마주할 때 발생하는 최종적으로 사물에 대한 편견을 결정하는 심상을 이차 심상이라 한다. 이차 심상이 생성될 때 관찰자는 이전의 기억과 현재의 정황들이 일차 심상에 대입되어 해석을 갖게 되는 과정을 갖는다. 이때 현재의 정황의 부류에서 사물에 대한 접근성, 즉 간단함과 복잡함은 고려 대상이다. 얼마 전 어머니께서 말차를 보내주셨다. 녹차는 수 많은 종류의 내리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난 프렌치프레스 밖에 없다. 그래서 프렌치프레스를 이용하는 방식만 사용할 수 있다. 프렌치프레스는 편리하다. 커피 내릴 때도 쓰고, 차를 우릴 때도 쓸 수 있다. 문제는 어머니께서 .. 수건 20.5.2. 수건을 많이 쓰는 편이다. 하루에 세 장 정도 사용한다. 아침에 씻고 한 장, 외출 후 세수하고 한 장, 자기 전에 샤워하고 한 장 쓴다. 일주일만 빨래를 안 해도 빨래해야 하는 수건이 21 장이 된다. 하지만 수건이 15 장 밖에 없어서 적어도 4일 안에 한 번씩은 꼭 빨래를 해야 한다. 이는 주기적으로 빨래를 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장치 역할을 수행한다. 또 다른 장치가 하나 더 있다. 수건 15장을 모두 널면 내가 가진 빨래대에 3분의 2가 가득 찬다. 4에서 5일에 한 번씩 빨래를 하면 빨래건조대가 빨래를 수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작은 빨래통을 구했다. 빨래건조대가 수용할 수 있는 빨래의 개수는 약 20장 정도로 5L에 해당하는 빨래 양이 가장 적당하다는 결론이 났고, 5L 빨래통을 샀다. 빨래통이.. 버튼 2020.5.1. 요즘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은 버튼을 통해 일어난다. 모든 제품이 버튼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하는 키보드에는 56개의 버튼이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에는 세 개의 물리적 버튼과 수만 개의 스크린 버튼이 있다. 터치스크린은 한 제품이 가능한 활동을 수만 개로 늘려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터치스크린이 수만 개의 버튼이기 때문이다. 버튼은 작은 범주로는 차단된 전력을 연결시켜 활동이 일어나게 해주는 것이고, 큰 범주로 말하면 모든 명령이다. 구두로 행해지는 명령 혹은 친서로 행해지는 명령이 아닌 모든 명령은 버튼이다. 아니 어쩌면 말이나 글씨 또한 하나의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니, 말과 글씨도 일종의 버튼이라 말할 수 있겠다. 버튼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점점 더 정밀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통조림 20.4.30. 최근 들어 통조림을 자주 마주한다. 통조림에 들어 있는 것은 그게 무엇이 됐든 몸에 해로울 것 같은 기분을 준다. 최근에 자주 마주친 통조림은 '하림'에서 나온 '하얀 속살'이라는 닭가슴살 통조림이다. 이 통조림 역시 몸에 해로울 것 같은 냄새가 난다. 게다가 얼핏 통조림 고양이 밥 같은 느낌도 준다. 식품 보존엔 전통적으로 세 가지 방식이 있다. 건조, 냉동, 절임이다. 꽁치를 건조하면 과메기, 냉동하면 냉동 꽁치, 절이면 꽁치 통조림이 된다. 전통 방식의 건조와 절임은 감칠맛을 극대화한다. 건조는 오랜 기간에 걸쳐 단백질에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고, 절임은 소금이나 식초를 이용해 무산소 발효를 일으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조는 과메기와 선 드라이드 토마토이고, 절임은 시메사바와 가자미식해이다. 북.. 모니터 20.4.27. 지난 2주간 사무직 직장인을 다루는 작업을 진행하려다 말았다. 코로나 19 문화예술인 재난지원사업에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안 하는 것이 더 이득일 것으로 생각해 그만뒀다. 작업을 진행하며, 사무직 직장인이 가장 가깝게 생각하는 사물이 무엇인지 조사했었다.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사물은 모니터였다. 가만 생각해보면 웬만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사물은 모니터다. 모니터를 넓은 범주로 생각해 화면이라 한다면, 우린 아침을 시작할 때 화면을 보고, 잠들기 전에 화면을 본다. 인류의 화면에 지배당한 현실을 다루는 작품은 2010년대 한국 미술사의 주요 흐름이었다. 내가 존경하는 윤원화 비평가가 2010년대 한국미술사를 마무리하며 출간한 책의 제목은 이었다. 2020년을 맞이하며 난 현대인의 미.. 버섯 20.4.25. 며칠째 보고 있는 유튜버가 있다. '판달'이라는 요괴들을 소개해주는 유튜버다. 다양한 나라의 요괴들을 소개해준다. 외계인이나 신도 소개해준다. '판달'의 입장에서 외계인이나 신도 요괴의 범주에 포함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외계인은 근대에 상상된 요괴이고, 신은 아직까지 대중에게 유효한 상상 속 형상이지 않나 싶다. 더불어 최근 알게 된 사실은 박쥐에 대한 이야기다. 박쥐의 종류는 약 1100개로 포유류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종이 박쥐라고 한다. 더불어 가장 오래 산 포유동물이기도 하고, 콜센터를 상상케 하는 무리 생활을 한다. 이것이 대부분 위독한 전염병이 박쥐에서 비롯된 것의 이유이다. 박쥐만큼 바이러스가 살고, 바이러스를 퍼트리기 유용한 포유류는 없다. 그리고 버섯 사진을 많이 찾아봤다. 버섯전.. 안경 20.4.15. 두 달 전, 가방에 대한 글을 쓰며 안경을 개인 이미지 결정의 최전선에 있는 잡화 중 하나라고 언급한 적이있다. 그리고 안경이 바뀌었을 때 주변인에게 주는 괴리감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 오늘 메일함을 열었는데, '젠틀몬스터'에서 광고가 왔다. 제니와 협업한 신제품이 출시된다는 광고였다. 잊고 있었던 안경의 중요성이 떠올랐다. 최근 안경이 얼굴에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스탠다드한 안경을 쓰면서 안경에 대한 고민을 한동안 하지 않고 있었다.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안경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어야 하며 어떤 의미를 안고 라식도 하지 않고 렌즈도 사용하지 않으며 안경을 착용하는지를, 즉 내 안경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 안일하게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은 라식을 하는게 맞다. 이렇게 생각하.. 몬스터 에너지 20.4.14 최근, 몬스터 에너지를 마시기 시작했다. 2n 년동안 한 번도 에너지 드링크를 마셔본 적이 없었다.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는 것이 범법 행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거나 유튜브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과 같은 종류의 나 자신만의 가책이 있었다. 가끔 나 자신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상사가 검토해 보겠다고 한 것을 허락한 걸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도 있고, 직원들의 의견이 반도 채 모이지 않았는데 결단 내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날은 다음 날 출근하기가 두렵다. 잠도 안 오고 양심의 가책이 너무 심한 하루다. 하루는 잠도 못 잘바에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려 했다. 카페가 다 닫아서,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려하는데 몬스터 에너지가 보였다. 10여 년동안 금기라고 생각.. 새우칩 20.4.13. 새우칩 너무 맛있다. 새우칩에 차조기 페이스트를 올려 먹으면 정말 자극적이다. 스리라차 소스도 정말 잘 어울린다. 예전에 발리에 갔을 때, 새우칩 정말 많이 먹었다. 어느 식당을 가도 밥 대신 새우칩을 줘서 새우칩에 카레 엄청 먹었다. 그때부터 시작됐다, 나의 새우칩 사랑은. 하지만 난 절대 새우칩을 사 먹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지 과자 코너에서는 새우칩에 손이 가지 않는다. 오늘은 왜 과자 코너에선 새우칩에 손이 가지 않는지에 대해 고민해보기로 했다. 누가 과자를 한 박스 사오면 난 새우칩을 먹는다. 혹은 누가 '과자 사다 줄까?'하고 물어보면 주저 없이 새우칩을 말한다. 근데 막상 내가 마트에 가면 그 좋아하는 새우칩이 마트를 나와야 기억난다. 어쩌면 그냥 새우칩을 키로 단위로 사놓고, 밥 대신 먹으.. 캔버스 20.4.12. 유일하게 잘한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 회화고, 나의 아웃풋이 될 수 있는 유일한 형태가 회화다. 그렇기에 캔버스는 나의 생계에서 필수적인 사물이다. 술을 그만 마시겠다는 말만큼 자주 하는 말이 그림을 그만 그리겠다는 말이다. 술처럼 캔버스 또한 내게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서 캔버스가 아닌 재료를 사용해봤는데 몸에 너무 해롭거나, 결과적으로 더 비싸지기만 했다. 회화는 사물에서 내게로 전달된 심상이 어떤 것인지를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장치이다. 이를 위해 화가는 사물들의 심상을 꾸준히 축적해나가야 하고, 학습해야 한다. 회화만큼 미술에서 직설적으로 심상을 내리꽂는 장치는 없다. 회화가 시각 미술의 역사 전반에서 언제나 주인공을 맡아 왔고, 주인공으로써 가장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오며 가장 눈에.. 벌레 20.4.11. 불 꺼진 천장에 벌레가 오가고 있다. 두 마리인 줄 알았는데, 하나는 그림자였다. 내 아이패드에서 나오는 불빛에 그림자가 생겼다. 벌레는 사물이 아니다. 사물이 아닌 것은 사물보다 훨씬 많은 감각과 그에 따른 다방면의 심상을 소유하고 있다. 사물에 비해 심상이 다채로워지는 이유는 사물이 아닌 것은 개체적 성장을 하기 때문이다. 사물의 심상은 소진된다. 그러나 사물이 아닌 것은 각 개체의 심상을 쌓아 간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벌레는 죽음을 연상시킨다. 이 벌레는 나방인 것 같다. 께름칙한 느낌이 드는 절지동물은 모두 벌레다. 이제 없어졌다. 저 나방은 며칠 안에 죽을 것이다. 이 방엔 나방이 먹을 만한 게 없다. 나방은 여기 갇혀 내게 잡혀 죽거나, 말라죽을 것이다. 여기서 나를 피해 숨어 다녀야 하니.. 필통 20.4.10. 지난 3일 동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4월 6일 나는 이 활동이 유효한 활동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기로 했었다. 그러나 다른 일들로 많이 바빴다. 요즘 아포칼립스 세대의 직장인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스크립트를 만드느라 다른 고민을 할 시간이 없었다. 또 집 청소도 너무 할게 많았다. 그래서 어떠한 변화 없이 그냥 하던 대로 지칠 때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필통이 될 가능성을 가진 사물은 매우 많다. 필통을 제외하고, 수저통도 필통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서랍장도 필통이 될 수 있고, 코트 주머니도 될 수 있고, 가방도 필통이 될 수 있다. 필기구 서너 개가 들어갈 공간만 된다면 대부분 필통이 될 수 있다. 초등학생 때 이후로 필통을 산 적이 없다. 사무실에서는 컵과 화분이 필통 역할을 하.. 아령 20.4.6. 저런 붉은색 아령이 매일 놓여 있던 곳이 있었는데, 그게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운동하는 곳은 아니었었고, 미술학원에는 쇳덩이로 된 덤벨만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럼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자주 갔었던 공간이 또 있다는 것일까.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작은 체육사 하나 있다. 원체 운동을 혐오해서 체육사가 집 근처에 있다는 것이 한 켠으로 내 일상의 질을 떨어트린다고 생각했었다. 며칠 전에 그 앞을 지나가다가 붉은색 아령을 마주쳤다. 데자뷔 같이 아령과 관련된 사건들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돌았다. 분명 익숙한 공간에서 자주 마주한 것 같은데 그게 내가 매일 집 앞 체육사를 지나다녀서였던 걸까. 아니면 미디어 노출을 통해서였던 걸까. 근데 그만 생각하고 싶다. 오늘은 글을 그만 써야겠다. 언제쯤 .. 고수 20.4.5.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채소는 고수다. 다양한 채소들을 좋아하지만 쌈을 싸 먹을 때 가장 좋은 것이 고수인 것 같다. 한 번은 어떤 기회였는지 고수 씨를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지난해 이맘때쯤 한 번 심었었다. 성인이 되고 혹은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으로 씨를 심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 서오릉 인근 주말 농장에서 여러 채소들을 키웠었다. 내가 기른 고수는 종자가 일반 고수와 달랐던 이유였는지, 혹은 물을 너무 적게 줬던 건지 내가 알고 있던 고수 이미지에 비해 엄청 빈약했다. 이파리가 일반적으로 보던 고수에 비해 훨씬 가냘팠으며 심지어 꽃도 폈는데 꽃마저도 인터넷에 검색해본 고수 꽃 사진에 비해 너무 작고 아담했다. 그리고 줄기도 힘이 없어 옆으로 누워서 자랐다. 그게 고수인가 의심하면서 키웠다. 고.. 돌 20.4.4. 돌은 언어적으로 매우 불완전하다고 판단한다. 돌이 의미하는 범주가 너무 넓기 때문이다. 손으로 잡기 만해도 부스러지는 활석부터 다이아몬드까지, 작은 모래알부터 바위산까지 모든 것을 돌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심지어 시멘트로 만든 벽돌도 이름에 돌이 들어간다. 돌만을 연구하는 학문인 지질학이 존재할 정도니 실상 돌은 미술이나, 철학, 경제학만큼 넓은 범주를 지니고 있는 단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은 범주를 이야기하는 단어이자, 개체를 지칭하는 단어인 희소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이와 비슷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단어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직장인이다. 직장인의 범주는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의 개수보다 넓고, 사무실의 개수보다 세분화되어 있다. 하지만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CCTV만 보고 있는 사람도, 편.. 전자담배 20.4.3. 동시대 가장 미래주의적인 산물을 말하라 하면 난 전자담배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전자담배는 과거의 사람들이 절대 상상도 못 했을 물건임에 틀림없다. 불이 붙지 않는 담배, 전기를 필요로 하는 담배. 전자담배는 날아다니는 보드나 저절로 끈을 묶는 운동화와 같은 결로 볼수 있다. 쓸모없는데 있으면 신기할 것 같은 물건, 게다가 전기가 들어가는, 그것이 바로 미래주의가 아닌가 싶다. 개발되고 있는 전자담배들의 형태도 매우 미래지향적으로 디자인되고 있으며, 색상도 스마트폰이나 노트북과 같은 전자기기에 호응하는 색상을 선택하고 있다. 진정한 미래에 가장 밀접하게 다가온 것은 과거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물건인 전자담배이다. 전자담배를 이용하는 주 고객층이 누구인지도 참 중요하다. 과거 상상해 온 미래주의적 산물들.. 사무실 20.4.2. 사무실에 대한 로망이 있다. 특히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로망을 가졌다. 출판사의 오래된 가구들과 책들이 썩는 냄새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90년대에 창립되어 나와 동년배인 출판사들은 몇 번을 이사하고 몇 번을 리모델링해도 오래된 가구와 책들 썩는 냄새를 가리지 못한다. 나와 동년배의 회사이기에 그 회사들이 썩어가는 것에 내가 동질감을 표할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나의 아버지가 편집을 시작했던 시기는 내가 태어나기 전 5년으로 그 당시 창립된 회사들은 여전히 아버지와 연이 닿아있고, 그 연은 내게로 이어졌다. 그 출판사들을 만든 분들이 가지는 애착의 썩은 정도는 내 아버지가 나에게 갖는 애착이 썩은 정도와 비슷할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내 아버지의 서재와 그 출판사들의 냄새가 .. 종이컵 20.4.1. 종이컵을 요즘 너무 많이 쓴다. 오늘도 3개나 썼고, 잠시 뒤에 한 개 더 쓸 것 같다. 미술학원에서 일할 때도 그렇고, 학교를 다닐 때도 그렇고, 지금 근무하는 곳에서도 그렇고 항상 내가 일하는 곳은 종이컵을 너무 많이 쓴다. 지금 근무하는 곳에선 개인 당 하루에 평균 2개 이상 쓰고 있다. 요즘이 아니라 나는 언제나 종이컵을 낭비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꼭 커피를 사는데 생각해보니 그것도 종이컵이었다. 그럼 오늘은 5개나 사용했네. 사무실에 종이컵이 자주 떨어진다. 그럼 한동안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데, 별로 불편하지 않게 들고 다녔던 것 같다. 그런데도 종이컵이 다시 생기면 텀블러는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는다. 분기에 한 번씩 누군가가 종이컵에 이름을 써서 하루에 한 개만 사용하자는.. 십자 드라이버 20.3.31. 십자드라이버는 흉기다. 십자드라이버는 액션 영화에서 히든카드 역할을 맡으며 위기의 순간에 적을 찔러 죽인다. 십자드라이버는 일자 드라이버의 진화 형태로 다양한 장치에 범용되는 십자 나사에 사용되는 공구이다. 십자드라이버는 편의를 위해 드릴을 통해 사용되기도 한다. 다양한 크기의 나사에 맞게 다양한 크기의 십자드라이버 또한 존재한다. 사용 범위가 넓어 가정마다 하나 이상씩 꼭 가지고 있다. 십자드라이버의 긴 꼬챙이의 형태는 송곳과 닮았으며, 실제로 가끔 송곳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이에 송곳으로 할 수 있는 찌르는 행위를 흡수해, 미디어에서 십자드라이버는 흉기로 자주 사용된다. 결정적인 순간 십자드라이버가 선사하는 역전의 쾌감은 원초적 쾌감 중 하나인 찌르는 행위의 쾌감과 이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원초.. 국자 20.3.30. 국자는 어렵다. 오늘 다루기로 한 사물은 국자이다. 지금껏 국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사물 기록에서 다뤄온 사물들은 다 과거 한 번씩은 생각해 본 경험이 있는 사물들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진짜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물을 다뤄야 하는 때가 되었다. '사물'만을 다루는 것에 빨리 질리고 그만둘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는 부지런했다. 사물 기록은 새로운 국면을 마주했고, 대상의 범주가 한 번 확장되었다. 국자는 기본적으로 세가지 종류가 있다. 민무늬, 면, 건더기 국자 이렇게 세 가지다. 재질에 따라서는 네 가지로 나뉜다. 나무, 스테인리스, 실리콘, 플라스틱이다. 오늘 다룰 국자는 스테인리스 민무늬 국자이다. 한 때 소셜에서 '국자 마술'이라는 밈이 돌았던 적이 있다. '국자 .. 라이트닝 케이블 충전기 20.3.29. 충전기마다 충전되는 속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아이패드 미니 5세대를 구입하고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과거 아이폰5S 이후 오랜만에 구입한 라이트닝 케이블은 아이폰5S를 사용하던 5년 전과 다른 점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폰5S에 사용하던 충전기는 아이패드 미니 5세대를 구입하며 받은 라이트닝 케이블에 비해 매우 느리게 충전이 되었다. 충전기 콘센트를 보니 가장 크게 5W라고 쓰여있었고, 새로 받은 것에는 12W라고 써져있었다. 대략 2배나 차이나는 성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긴 5년이나 지나고 난 고등학생에서 대학 졸업을 앞둔 사람이 되었는데 하나도 변한 게 없는 충전기라면 지금 들리는 수준의 비난을 훨씬 뛰어넘는 비난을 애플은 받아야 한다. 관심 있는 사람들이랑 진화하는 기기들만이 알아차리는 진.. 여주 20.3.28. 여주는 키위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과채류의 사물 중 하나이다. 여주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요소는 여주의 이름과 생김새이다. 여주는 '고야'라는 방언을 가지고 있다(오키나와어 단어인 '고야 ゴーヤ'에서 파생). 여주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미술사 시간에 '프란시스코 고야'를 배우면서 였다. '고야'를 구글에 검색했는데, 관련 검색어에 '여주 고야'가 있었고, '여주 고야'를 클릭했던 순간부터 여주는 나에게 심상 헌납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 난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을 싫어한다. 그 사람이 그림을 왜 그렸는진 알겠는데 내겐 너무 괴롭다. 특히 붓질이 맘에 안 든다. 그래서 '여주 고야'를 클릭했을 때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에 비해 '여주 고야'의 이미지가 생성한.. 1일 10줄 - 심상 도출식의 초안 20.3.28 스퀴지 20.3.27. 한 번 사면 다시 안 살 수 없는 것들의 부류에 스퀴지가 포함되어있다. 스퀴지로 거울을 닦을 때만큼의 쾌감을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퀴지에 대한 내 사랑은 너무 커서 내 상상 속 심상 분류 사전엔 스퀴지의 심상이라는 대분류가 존재한다. 스퀴지의 매력 중 일부는 형태와 기능의 도형적 유사성에서 온다. 스퀴지의 행동은 T자의 사물이 평평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물의 표면에서 네모난 형상을 얻어내기 위한 노력으로 매우 도시적이다. 닦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도시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온다. 또한 스퀴지의 행동은 스퀴지가 차원을 확장시키고 있다는 상상을 낳기도 한다. 스퀴지가 가능한 것은 전체 면 위에서 직선을 아래로 내리며 또 다른 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행동에서 .. 파리지옥 20.3.26. 동생이 파리지옥을 샀다고 자랑했다. 집에 놀러 오면 손에 한 번 물리게 해주겠다고 했다. 파리지옥에게 물리자. 모든 것을 혐오할 자신이 있던 때가 있었다. 모든 사람이 모자라기 때문에 모자란 걸 이해하며 사는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동생이 자랑한 파리지옥이 어떻게 이런 심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의 나와 현재의 동생의 파리지옥, 그리고 현재의 상황이 조합되어 도출된 이 심상은 내가 믿기로 한 심상 도출식에 걸맞게 도출되었다. 나는 모자란 것 중의 일부이다. 그리고 모자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속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이 속성은 모자라다는 귀여운 말을 넘어 너무도 사악하고 추한 것이었다. 난 나의 젠더를 너무나 사랑했으나, 지금은 이 속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에.. 맥주 20.3.25. 한 잔에 만원이 넘는 맥주에 돈을 쓰게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 울드 라스푸틴을 마셨기 때문이다. 울드 라스푸틴 너무 맛있다. 이전까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해 온 맥주는 매우 쓴 IPA였고, 그것마저도 맥주 치고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한 잔에 만 팔천 원이나 하는 울드 라스푸틴은 맥주가 아닌 다른 주류로 뇌리에 각인됨과 동시에 이것보다 싼 맥주는 맛없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와 비슷하지만 다른 술에 대한 사건이 하나 더 있다. 포트와인에 대한 것인데, 포트와인은 와인과 이름은 같지만 속성은 와인과 다르다. 그러나 같은 이름을 공유하기에 이전까지 마시던 와인들과 비교되어 다른 와인이 너무 맹맹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이전엔 팔천 원만 해도 나름 만족하며 마실 수 있었으나, 이젠 입맛에 맞지 않.. 카누 20.3.24. 카누는 쓰레기다. 근데 카누가 너무 먹고 싶었다. 감금이 나의 입맛을 바꿨다. 코로나로 인한 자체 감금에 의해 카페도 가지 못하고, 외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집에 원두는 다 떨어지고, 집에만 있다 보니 밖에 나가기가 무서웠다. 집에 굴러다니던 믹스커피 스틱 4개를 발견하고 하루에 한 개씩 마셨다. 그리고 며칠간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그리고 이젠 카누가 먹고 싶어 졌다. 그래서 카누를 주문했다. 200봉을 시켰고, 하루에 3봉씩 먹으면 약 50일은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때쯤이면 이제 편하게 돌아다닐 때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원래 카누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카누가 등장한 것은 달고나 커피로 인해서이다. 사람들이 미쳐서 달고나 커피를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고, 그 재료가 카누였다.. 실외기 20.3.23. 실외기 위에 종이상자를 올려두면 전기세를 조금 아낄 수 있다는 민간요법을 들었다. 실외기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은 보통 여름의 일이다. 뜨거운 여름에 골목에서 더 뜨거운 바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실외기의 역할이다.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실외기는 냉방을 사용할 시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 그렇다면 난방을 사용할 땐 차가운 바람이 나올까. 실외기는 온난화의 실존을 가장 가까이서 체감하게 만들어주는 사물이다. 한여름, 실외기의 뜨거운 바람에 쐬이면, 우리가 정말 온실을 만들고 있구나라는 상상을 자아낸다. 그럼에도 우린 어쩔 수 없이 실외기를 돌릴 수밖에 없다. 냉방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몸은 집에서 수비드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 날씨는 점점 더 더워지고, 우린 뜨거운 바람을 계속해서 ..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