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0.4.

돌 20.4.4.

   돌은 언어적으로 매우 불완전하다고 판단한다. 돌이 의미하는 범주가 너무 넓기 때문이다. 손으로 잡기 만해도 부스러지는 활석부터 다이아몬드까지, 작은 모래알부터 바위산까지 모든 것을 돌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심지어 시멘트로 만든 벽돌도 이름에 돌이 들어간다. 돌만을 연구하는 학문인 지질학이 존재할 정도니 실상 돌은 미술이나, 철학, 경제학만큼 넓은 범주를 지니고 있는 단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은 범주를 이야기하는 단어이자, 개체를 지칭하는 단어인 희소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이와 비슷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단어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직장인이다. 직장인의 범주는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의 개수보다 넓고, 사무실의 개수보다 세분화되어 있다. 하지만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CCTV만 보고 있는 사람도, 편집을 하는 사람도 모두 직장인이라 부른다. 월급을 받는 형태로 수익을 쌓는 모든 사람을 직장인이라 부를 수 있다. 동시에 직장인은 누군가를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A 씨의 직업은 직장인이다.'와 같이 말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상황이냐면, '고래밥은 탄수화물이다.'라는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오직 탄수화물의 범주에 고래밥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A 씨는 직장인이다.'라는 문장은 직장인이라는 범주에 A 씨가 들어가는 것임과 동시에, A 씨의 생계 방식이 직장인이기도 한 것이다.

   허나 이런 특징을 가진 단어들이 공유하는 사실은 이러한 특징의 단어들에게 멸시의 역사가 존재했거나, 단어들이 멸시 속에서 살고 있다는 점이다. 돌의 경우 그 범주가 세분화되기 전까지 모든 돌은 그냥 '돌'이었다. 그래서 '돌'은 지시 단어이자 분류 단어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직장인'은 모든 월급 받고 사는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로써 어떤 면에서는 모든 월급을 받는 사람들을 싹 다 묶어 표현한 단어이다. 일반 개인은 개의 품종을 수십 종 넘게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에 반해 달팽이는 그저 달팽이다. 월급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 월급을 받는 사람은 그저 직장인이고, 지질학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에게 바닥에 있는 것은 모두 돌이다.

'2020.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령 20.4.6.  (0) 2020.04.06
고수 20.4.5.  (0) 2020.04.05
전자담배 20.4.3.  (0) 2020.04.03
사무실 20.4.2.  (0) 2020.04.02
종이컵 20.4.1.  (0) 2020.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