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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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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 20.4.30. 최근 들어 통조림을 자주 마주한다. 통조림에 들어 있는 것은 그게 무엇이 됐든 몸에 해로울 것 같은 기분을 준다. 최근에 자주 마주친 통조림은 '하림'에서 나온 '하얀 속살'이라는 닭가슴살 통조림이다. 이 통조림 역시 몸에 해로울 것 같은 냄새가 난다. 게다가 얼핏 통조림 고양이 밥 같은 느낌도 준다. 식품 보존엔 전통적으로 세 가지 방식이 있다. 건조, 냉동, 절임이다. 꽁치를 건조하면 과메기, 냉동하면 냉동 꽁치, 절이면 꽁치 통조림이 된다. 전통 방식의 건조와 절임은 감칠맛을 극대화한다. 건조는 오랜 기간에 걸쳐 단백질에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고, 절임은 소금이나 식초를 이용해 무산소 발효를 일으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조는 과메기와 선 드라이드 토마토이고, 절임은 시메사바와 가자미식해이다. 북..
모니터 20.4.27. 지난 2주간 사무직 직장인을 다루는 작업을 진행하려다 말았다. 코로나 19 문화예술인 재난지원사업에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안 하는 것이 더 이득일 것으로 생각해 그만뒀다. 작업을 진행하며, 사무직 직장인이 가장 가깝게 생각하는 사물이 무엇인지 조사했었다.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사물은 모니터였다. 가만 생각해보면 웬만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사물은 모니터다. 모니터를 넓은 범주로 생각해 화면이라 한다면, 우린 아침을 시작할 때 화면을 보고, 잠들기 전에 화면을 본다. 인류의 화면에 지배당한 현실을 다루는 작품은 2010년대 한국 미술사의 주요 흐름이었다. 내가 존경하는 윤원화 비평가가 2010년대 한국미술사를 마무리하며 출간한 책의 제목은 이었다. 2020년을 맞이하며 난 현대인의 미..
버섯 20.4.25. 며칠째 보고 있는 유튜버가 있다. '판달'이라는 요괴들을 소개해주는 유튜버다. 다양한 나라의 요괴들을 소개해준다. 외계인이나 신도 소개해준다. '판달'의 입장에서 외계인이나 신도 요괴의 범주에 포함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외계인은 근대에 상상된 요괴이고, 신은 아직까지 대중에게 유효한 상상 속 형상이지 않나 싶다. 더불어 최근 알게 된 사실은 박쥐에 대한 이야기다. 박쥐의 종류는 약 1100개로 포유류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종이 박쥐라고 한다. 더불어 가장 오래 산 포유동물이기도 하고, 콜센터를 상상케 하는 무리 생활을 한다. 이것이 대부분 위독한 전염병이 박쥐에서 비롯된 것의 이유이다. 박쥐만큼 바이러스가 살고, 바이러스를 퍼트리기 유용한 포유류는 없다. 그리고 버섯 사진을 많이 찾아봤다. 버섯전..
안경 20.4.15. 두 달 전, 가방에 대한 글을 쓰며 안경을 개인 이미지 결정의 최전선에 있는 잡화 중 하나라고 언급한 적이있다. 그리고 안경이 바뀌었을 때 주변인에게 주는 괴리감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 오늘 메일함을 열었는데, '젠틀몬스터'에서 광고가 왔다. 제니와 협업한 신제품이 출시된다는 광고였다. 잊고 있었던 안경의 중요성이 떠올랐다. 최근 안경이 얼굴에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스탠다드한 안경을 쓰면서 안경에 대한 고민을 한동안 하지 않고 있었다.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안경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어야 하며 어떤 의미를 안고 라식도 하지 않고 렌즈도 사용하지 않으며 안경을 착용하는지를, 즉 내 안경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 안일하게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은 라식을 하는게 맞다. 이렇게 생각하..
몬스터 에너지 20.4.14 최근, 몬스터 에너지를 마시기 시작했다. 2n 년동안 한 번도 에너지 드링크를 마셔본 적이 없었다.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는 것이 범법 행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거나 유튜브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과 같은 종류의 나 자신만의 가책이 있었다. 가끔 나 자신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상사가 검토해 보겠다고 한 것을 허락한 걸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도 있고, 직원들의 의견이 반도 채 모이지 않았는데 결단 내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날은 다음 날 출근하기가 두렵다. 잠도 안 오고 양심의 가책이 너무 심한 하루다. 하루는 잠도 못 잘바에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려 했다. 카페가 다 닫아서,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려하는데 몬스터 에너지가 보였다. 10여 년동안 금기라고 생각..
새우칩 20.4.13. 새우칩 너무 맛있다. 새우칩에 차조기 페이스트를 올려 먹으면 정말 자극적이다. 스리라차 소스도 정말 잘 어울린다. 예전에 발리에 갔을 때, 새우칩 정말 많이 먹었다. 어느 식당을 가도 밥 대신 새우칩을 줘서 새우칩에 카레 엄청 먹었다. 그때부터 시작됐다, 나의 새우칩 사랑은. 하지만 난 절대 새우칩을 사 먹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지 과자 코너에서는 새우칩에 손이 가지 않는다. 오늘은 왜 과자 코너에선 새우칩에 손이 가지 않는지에 대해 고민해보기로 했다. 누가 과자를 한 박스 사오면 난 새우칩을 먹는다. 혹은 누가 '과자 사다 줄까?'하고 물어보면 주저 없이 새우칩을 말한다. 근데 막상 내가 마트에 가면 그 좋아하는 새우칩이 마트를 나와야 기억난다. 어쩌면 그냥 새우칩을 키로 단위로 사놓고, 밥 대신 먹으..
캔버스 20.4.12. 유일하게 잘한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 회화고, 나의 아웃풋이 될 수 있는 유일한 형태가 회화다. 그렇기에 캔버스는 나의 생계에서 필수적인 사물이다. 술을 그만 마시겠다는 말만큼 자주 하는 말이 그림을 그만 그리겠다는 말이다. 술처럼 캔버스 또한 내게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서 캔버스가 아닌 재료를 사용해봤는데 몸에 너무 해롭거나, 결과적으로 더 비싸지기만 했다. 회화는 사물에서 내게로 전달된 심상이 어떤 것인지를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장치이다. 이를 위해 화가는 사물들의 심상을 꾸준히 축적해나가야 하고, 학습해야 한다. 회화만큼 미술에서 직설적으로 심상을 내리꽂는 장치는 없다. 회화가 시각 미술의 역사 전반에서 언제나 주인공을 맡아 왔고, 주인공으로써 가장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오며 가장 눈에..
벌레 20.4.11. 불 꺼진 천장에 벌레가 오가고 있다. 두 마리인 줄 알았는데, 하나는 그림자였다. 내 아이패드에서 나오는 불빛에 그림자가 생겼다. 벌레는 사물이 아니다. 사물이 아닌 것은 사물보다 훨씬 많은 감각과 그에 따른 다방면의 심상을 소유하고 있다. 사물에 비해 심상이 다채로워지는 이유는 사물이 아닌 것은 개체적 성장을 하기 때문이다. 사물의 심상은 소진된다. 그러나 사물이 아닌 것은 각 개체의 심상을 쌓아 간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벌레는 죽음을 연상시킨다. 이 벌레는 나방인 것 같다. 께름칙한 느낌이 드는 절지동물은 모두 벌레다. 이제 없어졌다. 저 나방은 며칠 안에 죽을 것이다. 이 방엔 나방이 먹을 만한 게 없다. 나방은 여기 갇혀 내게 잡혀 죽거나, 말라죽을 것이다. 여기서 나를 피해 숨어 다녀야 하니..
필통 20.4.10. 지난 3일 동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4월 6일 나는 이 활동이 유효한 활동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기로 했었다. 그러나 다른 일들로 많이 바빴다. 요즘 아포칼립스 세대의 직장인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스크립트를 만드느라 다른 고민을 할 시간이 없었다. 또 집 청소도 너무 할게 많았다. 그래서 어떠한 변화 없이 그냥 하던 대로 지칠 때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필통이 될 가능성을 가진 사물은 매우 많다. 필통을 제외하고, 수저통도 필통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서랍장도 필통이 될 수 있고, 코트 주머니도 될 수 있고, 가방도 필통이 될 수 있다. 필기구 서너 개가 들어갈 공간만 된다면 대부분 필통이 될 수 있다. 초등학생 때 이후로 필통을 산 적이 없다. 사무실에서는 컵과 화분이 필통 역할을 하..
아령 20.4.6. 저런 붉은색 아령이 매일 놓여 있던 곳이 있었는데, 그게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운동하는 곳은 아니었었고, 미술학원에는 쇳덩이로 된 덤벨만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럼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자주 갔었던 공간이 또 있다는 것일까.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작은 체육사 하나 있다. 원체 운동을 혐오해서 체육사가 집 근처에 있다는 것이 한 켠으로 내 일상의 질을 떨어트린다고 생각했었다. 며칠 전에 그 앞을 지나가다가 붉은색 아령을 마주쳤다. 데자뷔 같이 아령과 관련된 사건들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돌았다. 분명 익숙한 공간에서 자주 마주한 것 같은데 그게 내가 매일 집 앞 체육사를 지나다녀서였던 걸까. 아니면 미디어 노출을 통해서였던 걸까. 근데 그만 생각하고 싶다. 오늘은 글을 그만 써야겠다. 언제쯤 ..
고수 20.4.5.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채소는 고수다. 다양한 채소들을 좋아하지만 쌈을 싸 먹을 때 가장 좋은 것이 고수인 것 같다. 한 번은 어떤 기회였는지 고수 씨를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지난해 이맘때쯤 한 번 심었었다. 성인이 되고 혹은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으로 씨를 심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 서오릉 인근 주말 농장에서 여러 채소들을 키웠었다. 내가 기른 고수는 종자가 일반 고수와 달랐던 이유였는지, 혹은 물을 너무 적게 줬던 건지 내가 알고 있던 고수 이미지에 비해 엄청 빈약했다. 이파리가 일반적으로 보던 고수에 비해 훨씬 가냘팠으며 심지어 꽃도 폈는데 꽃마저도 인터넷에 검색해본 고수 꽃 사진에 비해 너무 작고 아담했다. 그리고 줄기도 힘이 없어 옆으로 누워서 자랐다. 그게 고수인가 의심하면서 키웠다. 고..
돌 20.4.4. 돌은 언어적으로 매우 불완전하다고 판단한다. 돌이 의미하는 범주가 너무 넓기 때문이다. 손으로 잡기 만해도 부스러지는 활석부터 다이아몬드까지, 작은 모래알부터 바위산까지 모든 것을 돌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심지어 시멘트로 만든 벽돌도 이름에 돌이 들어간다. 돌만을 연구하는 학문인 지질학이 존재할 정도니 실상 돌은 미술이나, 철학, 경제학만큼 넓은 범주를 지니고 있는 단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은 범주를 이야기하는 단어이자, 개체를 지칭하는 단어인 희소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이와 비슷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단어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직장인이다. 직장인의 범주는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의 개수보다 넓고, 사무실의 개수보다 세분화되어 있다. 하지만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CCTV만 보고 있는 사람도, 편..
전자담배 20.4.3. 동시대 가장 미래주의적인 산물을 말하라 하면 난 전자담배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전자담배는 과거의 사람들이 절대 상상도 못 했을 물건임에 틀림없다. 불이 붙지 않는 담배, 전기를 필요로 하는 담배. 전자담배는 날아다니는 보드나 저절로 끈을 묶는 운동화와 같은 결로 볼수 있다. 쓸모없는데 있으면 신기할 것 같은 물건, 게다가 전기가 들어가는, 그것이 바로 미래주의가 아닌가 싶다. 개발되고 있는 전자담배들의 형태도 매우 미래지향적으로 디자인되고 있으며, 색상도 스마트폰이나 노트북과 같은 전자기기에 호응하는 색상을 선택하고 있다. 진정한 미래에 가장 밀접하게 다가온 것은 과거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물건인 전자담배이다. 전자담배를 이용하는 주 고객층이 누구인지도 참 중요하다. 과거 상상해 온 미래주의적 산물들..
사무실 20.4.2. 사무실에 대한 로망이 있다. 특히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로망을 가졌다. 출판사의 오래된 가구들과 책들이 썩는 냄새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90년대에 창립되어 나와 동년배인 출판사들은 몇 번을 이사하고 몇 번을 리모델링해도 오래된 가구와 책들 썩는 냄새를 가리지 못한다. 나와 동년배의 회사이기에 그 회사들이 썩어가는 것에 내가 동질감을 표할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나의 아버지가 편집을 시작했던 시기는 내가 태어나기 전 5년으로 그 당시 창립된 회사들은 여전히 아버지와 연이 닿아있고, 그 연은 내게로 이어졌다. 그 출판사들을 만든 분들이 가지는 애착의 썩은 정도는 내 아버지가 나에게 갖는 애착이 썩은 정도와 비슷할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내 아버지의 서재와 그 출판사들의 냄새가 ..
종이컵 20.4.1. 종이컵을 요즘 너무 많이 쓴다. 오늘도 3개나 썼고, 잠시 뒤에 한 개 더 쓸 것 같다. 미술학원에서 일할 때도 그렇고, 학교를 다닐 때도 그렇고, 지금 근무하는 곳에서도 그렇고 항상 내가 일하는 곳은 종이컵을 너무 많이 쓴다. 지금 근무하는 곳에선 개인 당 하루에 평균 2개 이상 쓰고 있다. 요즘이 아니라 나는 언제나 종이컵을 낭비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꼭 커피를 사는데 생각해보니 그것도 종이컵이었다. 그럼 오늘은 5개나 사용했네. 사무실에 종이컵이 자주 떨어진다. 그럼 한동안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데, 별로 불편하지 않게 들고 다녔던 것 같다. 그런데도 종이컵이 다시 생기면 텀블러는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는다. 분기에 한 번씩 누군가가 종이컵에 이름을 써서 하루에 한 개만 사용하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