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통조림을 자주 마주한다. 통조림에 들어 있는 것은 그게 무엇이 됐든 몸에 해로울 것 같은 기분을 준다. 최근에 자주 마주친 통조림은 '하림'에서 나온 '하얀 속살'이라는 닭가슴살 통조림이다. 이 통조림 역시 몸에 해로울 것 같은 냄새가 난다. 게다가 얼핏 통조림 고양이 밥 같은 느낌도 준다. 식품 보존엔 전통적으로 세 가지 방식이 있다. 건조, 냉동, 절임이다. 꽁치를 건조하면 과메기, 냉동하면 냉동 꽁치, 절이면 꽁치 통조림이 된다. 전통 방식의 건조와 절임은 감칠맛을 극대화한다. 건조는 오랜 기간에 걸쳐 단백질에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고, 절임은 소금이나 식초를 이용해 무산소 발효를 일으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조는 과메기와 선 드라이드 토마토이고, 절임은 시메사바와 가자미식해이다.
북한 문화어로 통조림은 '통졸임'이라 표기되며 절임의 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인류는 인류사 전체를 아울러 유목과 전쟁을 멈추지 않았고, 이에 음식의 보존은 단순 장기간 보존뿐만 아니라 휴대에 용이하면서 보존이 가능한 형태로 진화해왔다. 숙성 식자재의 절반 이상은 보존뿐만 아니라 휴대에 용이하게 진화했다. 과메기나 육포, 시래기와 같은 말린 형태, 순대, 햄, 혹은 빵, 초밥과 같이 패키지가 가능한 형태 등은 모두 휴대에 용이한 변화의 예시이다. 한데 이와 같은 맛있고 영양소가 풍부한 전투식량을 놔두고 음식의 보존법은 19세기, 왜 맛없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일까. 파인애플 통조림을 예로 들어보자. 얼마 전 맥주집에서 말린 파인애플을 먹었었다. 매우 달고 흑맥주와 잘 어울렸다. 근데 왜 파인애플 통조림은 만들어진 걸까. 파인애플 통조림의 파인애플은 단물에 절여져 물컹하고 기분 나쁘다. 통조림으로 조리되어 원재료보다 더 감칠맛이 상승하거나 맛이 도드라지는 경우, 심지어 원재료만큼 맛있게 느껴진 경우조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통조림은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새로운 통조림들은 계속 생기고 있다. 하나 이는 모두 원재료의 맛을 폄하하고 있다. 아마 통조림과 전통 절임의 연결고리가 끊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통조림은 문화 진화에 있어, 과거 기원과 방식에 대한 연속성을 갖지 않는다면 맛있어질 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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