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 (31) 썸네일형 리스트형 십자 드라이버 20.3.31. 십자드라이버는 흉기다. 십자드라이버는 액션 영화에서 히든카드 역할을 맡으며 위기의 순간에 적을 찔러 죽인다. 십자드라이버는 일자 드라이버의 진화 형태로 다양한 장치에 범용되는 십자 나사에 사용되는 공구이다. 십자드라이버는 편의를 위해 드릴을 통해 사용되기도 한다. 다양한 크기의 나사에 맞게 다양한 크기의 십자드라이버 또한 존재한다. 사용 범위가 넓어 가정마다 하나 이상씩 꼭 가지고 있다. 십자드라이버의 긴 꼬챙이의 형태는 송곳과 닮았으며, 실제로 가끔 송곳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이에 송곳으로 할 수 있는 찌르는 행위를 흡수해, 미디어에서 십자드라이버는 흉기로 자주 사용된다. 결정적인 순간 십자드라이버가 선사하는 역전의 쾌감은 원초적 쾌감 중 하나인 찌르는 행위의 쾌감과 이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원초.. 국자 20.3.30. 국자는 어렵다. 오늘 다루기로 한 사물은 국자이다. 지금껏 국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사물 기록에서 다뤄온 사물들은 다 과거 한 번씩은 생각해 본 경험이 있는 사물들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진짜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물을 다뤄야 하는 때가 되었다. '사물'만을 다루는 것에 빨리 질리고 그만둘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는 부지런했다. 사물 기록은 새로운 국면을 마주했고, 대상의 범주가 한 번 확장되었다. 국자는 기본적으로 세가지 종류가 있다. 민무늬, 면, 건더기 국자 이렇게 세 가지다. 재질에 따라서는 네 가지로 나뉜다. 나무, 스테인리스, 실리콘, 플라스틱이다. 오늘 다룰 국자는 스테인리스 민무늬 국자이다. 한 때 소셜에서 '국자 마술'이라는 밈이 돌았던 적이 있다. '국자 .. 라이트닝 케이블 충전기 20.3.29. 충전기마다 충전되는 속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아이패드 미니 5세대를 구입하고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과거 아이폰5S 이후 오랜만에 구입한 라이트닝 케이블은 아이폰5S를 사용하던 5년 전과 다른 점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폰5S에 사용하던 충전기는 아이패드 미니 5세대를 구입하며 받은 라이트닝 케이블에 비해 매우 느리게 충전이 되었다. 충전기 콘센트를 보니 가장 크게 5W라고 쓰여있었고, 새로 받은 것에는 12W라고 써져있었다. 대략 2배나 차이나는 성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긴 5년이나 지나고 난 고등학생에서 대학 졸업을 앞둔 사람이 되었는데 하나도 변한 게 없는 충전기라면 지금 들리는 수준의 비난을 훨씬 뛰어넘는 비난을 애플은 받아야 한다. 관심 있는 사람들이랑 진화하는 기기들만이 알아차리는 진.. 여주 20.3.28. 여주는 키위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과채류의 사물 중 하나이다. 여주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요소는 여주의 이름과 생김새이다. 여주는 '고야'라는 방언을 가지고 있다(오키나와어 단어인 '고야 ゴーヤ'에서 파생). 여주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미술사 시간에 '프란시스코 고야'를 배우면서 였다. '고야'를 구글에 검색했는데, 관련 검색어에 '여주 고야'가 있었고, '여주 고야'를 클릭했던 순간부터 여주는 나에게 심상 헌납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 난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을 싫어한다. 그 사람이 그림을 왜 그렸는진 알겠는데 내겐 너무 괴롭다. 특히 붓질이 맘에 안 든다. 그래서 '여주 고야'를 클릭했을 때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에 비해 '여주 고야'의 이미지가 생성한.. 스퀴지 20.3.27. 한 번 사면 다시 안 살 수 없는 것들의 부류에 스퀴지가 포함되어있다. 스퀴지로 거울을 닦을 때만큼의 쾌감을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퀴지에 대한 내 사랑은 너무 커서 내 상상 속 심상 분류 사전엔 스퀴지의 심상이라는 대분류가 존재한다. 스퀴지의 매력 중 일부는 형태와 기능의 도형적 유사성에서 온다. 스퀴지의 행동은 T자의 사물이 평평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물의 표면에서 네모난 형상을 얻어내기 위한 노력으로 매우 도시적이다. 닦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도시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온다. 또한 스퀴지의 행동은 스퀴지가 차원을 확장시키고 있다는 상상을 낳기도 한다. 스퀴지가 가능한 것은 전체 면 위에서 직선을 아래로 내리며 또 다른 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행동에서 .. 파리지옥 20.3.26. 동생이 파리지옥을 샀다고 자랑했다. 집에 놀러 오면 손에 한 번 물리게 해주겠다고 했다. 파리지옥에게 물리자. 모든 것을 혐오할 자신이 있던 때가 있었다. 모든 사람이 모자라기 때문에 모자란 걸 이해하며 사는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동생이 자랑한 파리지옥이 어떻게 이런 심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의 나와 현재의 동생의 파리지옥, 그리고 현재의 상황이 조합되어 도출된 이 심상은 내가 믿기로 한 심상 도출식에 걸맞게 도출되었다. 나는 모자란 것 중의 일부이다. 그리고 모자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속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이 속성은 모자라다는 귀여운 말을 넘어 너무도 사악하고 추한 것이었다. 난 나의 젠더를 너무나 사랑했으나, 지금은 이 속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에.. 맥주 20.3.25. 한 잔에 만원이 넘는 맥주에 돈을 쓰게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 울드 라스푸틴을 마셨기 때문이다. 울드 라스푸틴 너무 맛있다. 이전까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해 온 맥주는 매우 쓴 IPA였고, 그것마저도 맥주 치고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한 잔에 만 팔천 원이나 하는 울드 라스푸틴은 맥주가 아닌 다른 주류로 뇌리에 각인됨과 동시에 이것보다 싼 맥주는 맛없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와 비슷하지만 다른 술에 대한 사건이 하나 더 있다. 포트와인에 대한 것인데, 포트와인은 와인과 이름은 같지만 속성은 와인과 다르다. 그러나 같은 이름을 공유하기에 이전까지 마시던 와인들과 비교되어 다른 와인이 너무 맹맹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이전엔 팔천 원만 해도 나름 만족하며 마실 수 있었으나, 이젠 입맛에 맞지 않.. 카누 20.3.24. 카누는 쓰레기다. 근데 카누가 너무 먹고 싶었다. 감금이 나의 입맛을 바꿨다. 코로나로 인한 자체 감금에 의해 카페도 가지 못하고, 외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집에 원두는 다 떨어지고, 집에만 있다 보니 밖에 나가기가 무서웠다. 집에 굴러다니던 믹스커피 스틱 4개를 발견하고 하루에 한 개씩 마셨다. 그리고 며칠간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그리고 이젠 카누가 먹고 싶어 졌다. 그래서 카누를 주문했다. 200봉을 시켰고, 하루에 3봉씩 먹으면 약 50일은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때쯤이면 이제 편하게 돌아다닐 때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원래 카누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카누가 등장한 것은 달고나 커피로 인해서이다. 사람들이 미쳐서 달고나 커피를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고, 그 재료가 카누였다.. 실외기 20.3.23. 실외기 위에 종이상자를 올려두면 전기세를 조금 아낄 수 있다는 민간요법을 들었다. 실외기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은 보통 여름의 일이다. 뜨거운 여름에 골목에서 더 뜨거운 바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실외기의 역할이다.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실외기는 냉방을 사용할 시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 그렇다면 난방을 사용할 땐 차가운 바람이 나올까. 실외기는 온난화의 실존을 가장 가까이서 체감하게 만들어주는 사물이다. 한여름, 실외기의 뜨거운 바람에 쐬이면, 우리가 정말 온실을 만들고 있구나라는 상상을 자아낸다. 그럼에도 우린 어쩔 수 없이 실외기를 돌릴 수밖에 없다. 냉방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몸은 집에서 수비드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 날씨는 점점 더 더워지고, 우린 뜨거운 바람을 계속해서 .. 향수 20.3.22. 무향 무취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향수는 시련을 준다. 무향 무취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선 먼저 어떤 종류의 냄새가 베이거나 생길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에게서 무슨 냄새가 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혹은 누군가의 향취가 나에게 베었는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계를 게을리하면 자신에게서 나는 냄새에 익숙해져 무향 무취의 사람이 될 수 없다. 혹, 무향 무취를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에게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자신을 무향 무취라고 말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있어 큰 무례이다. 그렇기에 절대적인 냄새의 양을 측량해두고 상시 그것에 비례해 자신의 냄새를 파악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에게 그 기준이 되는 것은 이 향수이다. 토요일마다 향수를.. 책장 20.3.21. 책장의 기본 형태는 직육면체이다. 큰 직육면체 안에 동일한 크기의 직육면체들을 일정한 규칙으로 파낸 형식이 책장의 기본 형태이다. 여기서 변형이 있다면, 직육면체의 장식이나, 직육면체들을 파낸 규칙, 재료의 변형 등이 있다. 이외의 세모난 형태나, 파낸 형태가 아닌 책을 올려두는 것은 책장이 아닌 선반 혹은 장식대로 본다. 직육면체의 책들을 정리하기 위한 가장 최적의 형식은 직육면체이다. 물론 책장을 빼곡히 책으로 채우지 않고, 책을 보여주기 위해 진열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진열을 하는 경우, 책장보다 앞서 말한 선반 혹은 장식대가 더 책장으로 알맞게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선반 혹은 장식대가 책장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변형되거나 책장과 융합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책을 다룰 때 사용되는 행동은.. 택배박스 20.3.20. 택배박스는 귀엽다. 택배박스가 주는 감각은 귀여움이다. 고양이도 귀엽다. 고양이는 택배박스에 미친다. 그리고 택배박스에 미친 고양이는 더 귀엽다. 그래서 택배박스는 자동적으로 택배박스에 미친 고양이의 심상을 도출한다. 그렇게 택배박스가 주는 감각은 귀여움이 된다. 고양이는 왜 택배박스에 미칠까. 난 어렸을 때 집에 큰 택배가 오면 그 택배박스를 자르고 꾸며서 집을 만들고 그 안에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택배박스는 아늑한 냄새를 풍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냄새가 종이 먼지 냄새라는 것 정도는 당시에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약 8년 전에는 작은 덩치의 사람이 큰 택배박스 안에 게임기를 설치하고 쭈그리고 들어가 게임을 하고 있는 밈이 돌았던 적이 있다. 또한 애니메이션 의 에피소드 88 '바보.. 바구니 20.3.19. 바구니는 종류가 정말 다양하다. 현대에 와서 바구니는 플라스틱 혹은 철제로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으니, 그 종류가 크기와 용도에 의해 가장 다양하게 나뉠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바구니의 종류를 나누는 기준은 크기와 용도로 나누기엔 무리가 있다. 과거의 바구니는 작게 나누자면 재료에 의해 크게 나누자면 지역에 의해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지역별로 다양한 섬유질 재료들이 존재하고 섬유질 재료들을 엮은 것이 바구니이니, 바구니는 섬유질의 다양성만큼이나 다양한 종류가 존재했다. 이 수많은 바구니 중 내 머릿속의 대표 바구니는 바로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 가지고 가서 학교 책상 서랍 안에 넣고 사용하던 노란색 바구니이다. 왜 수많은 크기와 용도와 재료의 바구니 중에 이것만 그려질까. 이 예시는 무심상 사고에 대.. 손 소독제 20.3.18. 한 번은 우리 마을의 옆에 있는 산에 불이 붙었다. 약 7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지름 40미터 정도 되는 큰 불이었다. 주민들은 산자락에 물을 부어 마을로 침투하는 것을 막았고, '고양시'라고 크게 박힌 헬리콥터 4대가 오가며 물을 뿌려댔다. 우린 만일을 대비해 소화전들을 모두 끌어와 대기하고 있었고, 그 밑에 살던 집 사람은 자신의 개 두 마리를 데리고 마을로 올라왔다. 불은 자연 발생한 것으로 파악되었고, 덩치가 큰 공무원 같은 사람들이 화재 지역으로 가서 잔 불씨를 완전히 제거하며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가장 구린 형식의 글쓰기는 에세이이다. 그 이유는 당연히 세상에 존재하는 글 중 에세이에 가장 구린 글들이 많고 가장 문학적인 글들이 적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이야기로 끝나는 일.. 카푸치노 20.3.17. 신을 통한다면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 또한 신의 이름이라면 허용되는 것도 많다. 성직자의 덕목은 고립된 상황에서 얼마나 더 첨예한 감각을 끌어내는지에 있다고 판단한다. 오직 경전을 통해 세상을 읽을 수 있어야 하며, 그 모든 것이 수도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전통적인 성직자가 된다는 것은 시대를 타지 않는 불변 진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파악하느라 소홀했던 속세를 신이 내린 진리로 자연스럽게 구제하는 것에 있다. 제약은 첨예함을 낳는다. 인류는 어떻게든 새로운 자극을 갈망한다. 이는 성직자도 마찬가지로 갇혀 있는 성직자는 어떻게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더 새로운 자극을 느끼길 갈망한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더 작고 미세한 감각들을 발견하면 발견할수록 그 감각은 신념이 되고, 정말 작아져 어느 순.. 랩 20.3.16. 우리 집은 랩을 사용하지 않는다. 랩을 사용하지 않는 집이라는 점에서 예상되듯이 오븐도 사용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랩을 사용하는 것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배웠고, 오븐도 그렇게 배웠다. 내 머릿속에 랩과 오븐은 하나의 세트이다. 어머니에게 요리를 배우고 요리 레시피를 찾아보면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처음 맞닿은 문제가 랩과 오븐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음식들에 환경호르몬이 섞여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혹은 섞여 있다는 착각이 머릿속으로 들어왔을 때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개수는 줄어들었다. 현재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랩이 발명됨으로써 식문화는 한 단계 발전했다. 랩이 없었다면 여전히 우린 투박한 모양의 고기만을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랩이 없었으면 타임을 좀 더 오.. 담배 피우는 것 20.3.15. 매 순간 담배를 끊고 있지만, 담배를 끊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리고 내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기로 마음먹는 것 또한 매우 힘든 일이다. 담배를 기호식품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담배를 피우면 매우 행복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줄 아는 사람이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매우 행복할 것이라는 덫에 걸려 행복해도 행복함을 느끼지 못할 때이다. 그리고 담배를 끊는 것은 담배를 기호식품이라 말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상태는 온전히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그리고 진정 담배를 정확히 사용하는 사람은 이 사람들뿐이다. 담배를 기호식품이라 말하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상태에 따라 거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 주기 없는 .. 카스타드 20.3.14. '카스타드'와 같이 기존의 음식명을 따온 과자는 매우 많다. '벌집핏자', '새우깡', '신당동 장독대를 뛰쳐나온 떡볶이 총각의 맛있는 프러포즈' 등이 있다. 이 과자들은 당연히 알겠지만 이 음식들의 맛을 차용했다. 밀가루 튀김에서 어떻게 하면 피자맛이, 새우깡 맛이, 떡볶이 맛이 느껴질까를 연구하는 것이 제과업계 종사자들의 일일 것이다. 또는 자신이 만든 맛이 어떤 음식과 비슷한 맛인지를 판단해내는 것이 종사자들의 일일 수도 있다. '카스타드'의 어원은 충격적인 반전을 가지고 있다. 난 '카스타드'가 커스터드의 잘못된 표기인 줄 알았고, '카스타드'가 강조하는 것은 과자 속의 크림이 얼마나 커스터드와 유사한가 혹은 그보다 더 자극적인가에 초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카스타드'는 카스텔라와 커.. 공중전화 20.3.13. 공중전화는 핸드폰이 보급된 20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매우 느린 속도로 죽음을 맞고 있다. 손가락 끝부터 심장을 향해 타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공중전화는 죽음을 감각하고 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의 종류보다 살았었던 생명체가 훨씬 많듯이, 사물 또한 사용하고 있는 것보다 죽은 것들이 훨씬 많다. 공중전화의 자신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처절하고 비인간적인 죽음은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군인도, 초등학생도 핸드폰을 사용하는 지금, 더 이상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공중전화는 어째서 여전히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혹은 공중전화는 그 자리를 지키며 그대로 죽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사물이 죽어버렸음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경우가 있다. 경복궁이 그 예시이다. 시대의 급격한 변화로 사라지지 못했거나.. 유리잔 20.3.12. 원형적 심상의 범주는 어디까지 일까. 유리잔을 보면 불안함을 느낀다. 그 크기가 크고 얇을수록 더 큰 불안함을 느낀다. 이 불안함이 유리잔을 보는 보편적인 심상이라면 유리잔은 상용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유리잔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은 2월 중순이었다. 그 후로 와인을 마신 적이 없다. 술잔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유리잔이다. 술잔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를 제외하곤 실상 생활에서 유리잔을 마주할 일은 별로 없다. 내 뇌리에는 유리잔이 술과 결부되어 있다. 조마조마한 심상은 유리잔이 정말 깨질까 봐 생성되는 것일까 아니면 술이 두려운 것일까. 유리잔의 원형적 심상은 무엇일까. 유리잔이 내게 주는 역사적 이미지는 이집트에 기인한다. 이집트의 유리잔은 분명 두려운 존재, 신과 가까운 이들의 전유.. 칼라콘 20.3.11. 주차장에 있는 붉은 고깔의 이름은 칼라콘이다. 가끔 검은색 큰 고깔이 있기도 한데, 그것은 라바콘이라 불리는 이종이다. 한 번쯤은 칼라콘을 다리에 껴보았거나, 다리에 칼라콘이 낀 친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의 칼라콘의 심상은 다리에 낀 칼라콘에 기반한다. 의외로 칼라콘의 수지는 운동화에 밀착이 잘 돼서 한 번 끼면 잠시 낑낑대야 한다. 이는 칼라콘을 다리에 끼는 것을 한 번 해본 사람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으로 세상이 나뉘는 이유이다. 경험은 가장 크게 '해보다.'와 '해보지 않다.'로 나뉜다. 그 다음으로 경험은 행동의 분류로 나뉜다. 그러나 행동의 분류가 아닌 그 횟수로 나뉘기도 한다. 칼라콘은 '한 번 해보다.'와 '해보지 않다.'로 나뉜다. "영천 맛집,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신용카드 20.3.10. 약 1달 전 나는 신용카드를 같은 날 두 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날 나의 신용등급은 두 단계 떨어졌다. 돈이 급하진 않았다. 신용카드를 만든 이유도 사용하려고 만든 것은 아니었다. 첫번째 카드는 '현대카드 제로 포인트형'이다. 이 카드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를 사용하고 싶어서 만들었다. 월급도 받지 않는 내가 만들기에 딱 좋은 실용성 제로의 카드라고 생각했다. 잔액-잔고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국민은행에 갔다. 그리고 잔액-잔고 증명서를 받은 내 손에는 카드발급신청서가 함께 들려있었다. 그렇게 같은 날 '현대카드 제로 포인트형'과 'KB국민카드 올라운드'가 생겼다. 아직까지 이 카드들을 사용한 적은 없다. 이외에도 나에겐 체크카드가 다섯개 더 있는데 이 카드들 중에 사용하는 것은 단 하나 밖에 없다. 게.. 집게 20.3.9. 집게는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어져있으며, 스테인레스강은 10.5~11%의 크롬이 함유된 강철이다. 그리고 강철은 철에 0.2~3%의 탄소가 함유되어있다. 그러므로 집게는 크롬과 탄소와 철을 쌓아 올리는 방식의 일종이다. 심상은, 태초의 생물이 그러했듯이, 태초의 심상 하나에서 번성을 시작했다. 원자를 쌓는 방법을 우주는 지속해서 소진하고 있다. 그리고 탄소를 쌓는 방법 중 하나로 내가 생성되었고, 내가 생성된 방식의 원리를 찾아 올라가면 태초의 생물이 나온다. 그리고 태초의 탄소를 쌓는 법이 나온다. 어느 시점 한 원자 더미는 수소가 헬륨이 되는 것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헬륨이 되며 나온 중성자 하나는 원자 더미의 뇌리에 박혔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태초의 사물간의 교섭을 통한 변화,.. 맛소금 20.3.8. 맛소금은 소금과 글루탄산나트륨의 혼합으로 만들어졌다. 맛소금은 글루탄산나트륨과 소금이라는 두 개의 원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때 맛소금의 탄생을 이렇게 해석해 볼 수 있다. 글루탄산나트륨 혹은 소금은 모종의 사건(예시, 미각적으로 모자라다는 느낌을 받는 사건, 몸에 해롭다는 사건, 바다에서 채취된다는 사건, 화학물이라는 사건 등)을 내포하고 있고 이 모종의 사건들과 유사한 심상들을 가지고 있다. 이후 소금 혹은 글루탄산나트륨은 맛소금을 만들게 될 제작자와의 만남을 통해 맛소금이라는 파생체를 낳았다. 그리고 우리는 맛소금에서 '감칠맛을 돋우는 소금' 혹은 '몸에 해로울 것 같은 소금' 등의 독백을 도출하는 심상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 맛소금의 심상은 무엇에 의해 발현된 것인가를 고민해보자. 앞서의 맛소.. 자 20.3.7. 측량은 파생체이다. 숫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개수를 세는 것을 원체로 하는 파생체일 수 있다. 혹은 시각과 근육에 의존해 느끼는 것을 원체로 하는 파생체일 수도 있다. 파생체의 위상이 원체의 위상을 전도하는 현상은 모든 파생체에게서 일어나는 일이다. 파생체와 원체의 위상이 전도되는 빈도수가 많아지고 파생체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파생체는 생명을 얻는다. 균형감을 대체한 수평자가 그렇고, 공간감을 대체한 눈금자가 그렇다. 인스턴트커피가 커피를 전복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와 반대되는 상황이라 읽을 수 있다. 스마트폰은 이와 다른 진화라는 경로를 겪었다. 진화와 파생의 차이는 무엇인가. 파생체의 예시로 가장 많이 다뤄온 사물, 모형 키위는 대표적인 파생체의 전복을 위한 노력과 실패를 보여주는 사물이다. 이.. 부엌칼 20.3.6. 집에서 요리를 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이 있다. 가정에서 부엌칼은 한 개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한 개의 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낼수록 '내가 이거 하나로 이것도 할 수 있다니.'의 희열이 다가온다. 중국에 사는 사람들이 클리버를 들고 외치는 'Simple is best.'를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의 칼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난 다른 칼을 사고 싶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러 종류의 칼을 가져 보고 싶다. 어머니는 칼을 11개 가지고 계시다. 어머니도 긴 기간 가정 요리를 해오시며 나와 같은 아이러니를 겪으셨을 것이다. 실제로 어머니가 사용하시는 칼은 한 가지이고 그 칼만을 계속 갈아가며 사용하신다. 그리고 내게 요리를 가르쳐 줄 때에도 그 칼만을 사용하셨고 .. 구슬 20.3.5. 예술은 종교에서 태어났고, 현재도 대다수의 예술은 종교에서 기인했고, 종교에 기여하고 있다. 예술의 근간이 사상으로 바뀌어도 예술은 여전히 종교에 종사한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은 예술이 종교에 기여하는지 혹은 종교가 예술에 기여하는지에 있다. 현재는 종교가 없어도 예술이 있을 수 있으나, 예술이 없이는 종교가 존재할 수 없다. 예술이 수많은 변화를 겪어도 종교의 특성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전염병으로 인해 신생아 형태의 종교 하나가 세상에 들춰져 버리는 사건이 있었다. 한 종교의 모든 신도들과 교회, 그리고 그들의 이동 경로와 행동 방식까지 모든 것이 드러났다. 마치 손가락의 혈관 중 하나를 꺼내 보여주는 것과 유사했다. 한 인물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를 30만 명이 추종하게 되고. 자신의 .. 가위 20.3.4. 가위로 직접 머리카락을 잘라보면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가위는 베는 것이 아니라 찢는 것이다. 지각이 찢기듯 두 철이 위아래에서 서로 힘을 주어 종이 혹은 철판을 찢어낸다. 가위의 날카롭지 않은 날은 독립되어 있을 땐 무엇도 베어내지 못한다. 위와 아래에서 힘을 주어 찢어낸다. 그것을 상호작용으로 볼 수는 없다. 가위는 두 날이 한 쌍을 이루는 물체가 아니다. 두 날이 포함되어있는 사물이다. 윗니와 아랫니를 한쌍이라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물 하나를 상호작용을 하는 한쌍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는 이외에도 여럿 있다. 왼손과 오른손은 한쌍이 아니다. 스피커 두 개도 한쌍이 아니다. 동사 하나를 완성시키는 사물은 한쌍이 아닌 한 개의 사물이다. 왼손과 오른손이 하는 일이 다르지만 '나를 이룬다'라는 포지션.. 분무기 20.3.3. 락스가 물체의 표면을 녹이듯 락스가 담긴 분무기의 내부는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락스가 들어있는 분무기를 사용한다면 플라스틱이 희석된 환경호르몬을 사방에 뿌리는 꼴이 된다. 분무기를 분사하는 것은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일 중 하나이다. 맑은 날 화초에 분무기를 분사한다거나, 분무기로 무지개를 만드는 것은 행복한 행동이다. 화장실 청소를 위해 분무기에 락스 물을 넣어 분사하는 것도 쾌감을 부르는 시각, 후각적 감각을 준다. 분무기의 형태도 한몫을 한다. 분무기의 밝은 혹은 고채도의 색상은 이 행위를 행복하게 인식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선택된 색상인 양 보인다. 분사되는 촉감은 새벽에 물안개 속을 뛰어가는 기분을 준다. 분무기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미스트를 이 촉감을 극대화시켜주는 물건이라고 .. 릴 호스 20.3.2 Lilhose. 그 사람은 내게 사용할 때 엉키지 않도록 호스를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한 번은 앞으로 꼬아서 원을 만들고, 한 번은 뒤로 꼬아서 원을 만드는 것을 반복하면 나중에 사용할 때 호스는 꼬이지 않고 풀어진다. 난 릴 호스를 샀다. 릴 호스라고 해서 호스보다 편한 점은 찾기 어려웠다. 빨리 감으면 릴에 감겨들어가 여간 문제가 아니었다. 호스는 우리가 건물 외벽을 청소할 때 사용했다. 원래는 1층 외벽만 닦아 왔다. 2층까지 닦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사용하던 호스를 가지고 이틀 정도는 잘 닦아보려 했다. 많이 불편했다. 그 사람은 더 긴 호스를 사자고 했고, 난 릴 호스를 사자고 했다. 새로운 호스를 장만하는 것이 우리에겐 적지 않은 부담이었고, 이 고민은 다툼으로 나아갔으며, 결국 난 ..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