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을 요즘 너무 많이 쓴다. 오늘도 3개나 썼고, 잠시 뒤에 한 개 더 쓸 것 같다. 미술학원에서 일할 때도 그렇고, 학교를 다닐 때도 그렇고, 지금 근무하는 곳에서도 그렇고 항상 내가 일하는 곳은 종이컵을 너무 많이 쓴다. 지금 근무하는 곳에선 개인 당 하루에 평균 2개 이상 쓰고 있다. 요즘이 아니라 나는 언제나 종이컵을 낭비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꼭 커피를 사는데 생각해보니 그것도 종이컵이었다. 그럼 오늘은 5개나 사용했네.
사무실에 종이컵이 자주 떨어진다. 그럼 한동안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데, 별로 불편하지 않게 들고 다녔던 것 같다. 그런데도 종이컵이 다시 생기면 텀블러는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는다. 분기에 한 번씩 누군가가 종이컵에 이름을 써서 하루에 한 개만 사용하자는 제안을 한다. 그럼 그냥 텀블러를 들고 다니면 되지 않나 하면서 종이컵에 이름을 쓴다. 그렇게 하루에 종이컵 3개에 이름을 쓰고 퇴근한다. 종이컵이라는 사물 자체의 목적이 그냥 소비되는 것인가 보다. 그래서 종이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180cc 종이컵을 쓰는데 그 종이컵은 쓸 때마다 무슨 이유인지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내가 안 쓴다 해도 종이컵은 여전히 사무실에서 나뒹군다. 애당초 180cc 종이컵이 개발된 것 자체가 잘못이다. 두 모금 마시면 끝나는 크기의 컵을 어떻게 여러 번 사용할 수 있을까. 더욱이 종이컵이 항상 내가 노동을 하는 현장에 존재해 왔었다는 기억이 종이컵을 사용할 때마다 무시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가끔 종이컵을 구겨서 버리는 모습도 보이는데, 그 컵 안에는 뭔가 담배꽁초가 들어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믹스커피와 담배만큼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조합이 또 어디 있을까.
더욱이 카페에서 가져온 종이컵도 사무실에 엄청 돌아다니는데, 이것도 업무가 과해 커피 없이 시작을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비쳐 그 초라함을 더한다. 어쩔 수 없이 결국 퇴근할 때면 곳곳에 종이컵이 쌓인다. 종이컵을 모아서 치우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었음을 느낄 때면 정말 초라한 인간이 되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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