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 사면 다시 안 살 수 없는 것들의 부류에 스퀴지가 포함되어있다. 스퀴지로 거울을 닦을 때만큼의 쾌감을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퀴지에 대한 내 사랑은 너무 커서 내 상상 속 심상 분류 사전엔 스퀴지의 심상이라는 대분류가 존재한다. 스퀴지의 매력 중 일부는 형태와 기능의 도형적 유사성에서 온다. 스퀴지의 행동은 T자의 사물이 평평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물의 표면에서 네모난 형상을 얻어내기 위한 노력으로 매우 도시적이다. 닦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도시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온다. 또한 스퀴지의 행동은 스퀴지가 차원을 확장시키고 있다는 상상을 낳기도 한다.
스퀴지가 가능한 것은 전체 면 위에서 직선을 아래로 내리며 또 다른 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행동에서 얻어지는 형상은 닦이지 않은 곳과 닦인 곳이 구분되는 것이다. 닦인 곳은 닦이지 않은 곳과 명확하게 구분되어 스퀴지의 영역이 된다. 스퀴지의 영역이 확장되어 면을 완벽히 채운다면, 그 면은 다시 아무것도 없는 전체 면이 되고, 다음 세대의 스퀴지에게 닦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전체 면적에서 스퀴지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곳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전체 면은 닦인 곳과 닦이지 않은 곳으로 양분된 채 남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양분이 되면, 전체 면은 다음 세대의 스퀴지에 의해 역사책처럼 말끔히 지워질 수도 있으며, 다음 세대의 스퀴지도 같은 실수를 범해 전체 면 위에서 지속되는 역사책이 써질 수도 있다. 공간을 병치해 시간을 쌓을 수도 있으며, 공간을 나눠 시간을 분리하기도 한다.
이런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스퀴지의 매력 전반이라 생각한다면 이는 스퀴지에 대한 모욕이라고 본다. 스퀴지의 쾌감의 일부로 이러한 상상이 들어갈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스퀴지의 쾌감은 스퀴지와 거울로부터 나와 스퀴지와 거울로 끝난다. 단출히 아름다운 것은 정말 단출하게 아름답다. 아무런 상상도 안 하고 닦이는 스퀴지와 거울의 관계를 온전히 체감할 때, 나는 진정한 스퀴징을 하고 있다.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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