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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

카누 20.3.24.

   카누는 쓰레기다. 근데 카누가 너무 먹고 싶었다. 감금이 나의 입맛을 바꿨다. 코로나로 인한 자체 감금에 의해 카페도 가지 못하고, 외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집에 원두는 다 떨어지고, 집에만 있다 보니 밖에 나가기가 무서웠다. 집에 굴러다니던 믹스커피 스틱 4개를 발견하고 하루에 한 개씩 마셨다. 그리고 며칠간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그리고 이젠 카누가 먹고 싶어 졌다. 그래서 카누를 주문했다. 200봉을 시켰고, 하루에 3봉씩 먹으면 약 50일은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때쯤이면 이제 편하게 돌아다닐 때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원래 카누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카누가 등장한 것은 달고나 커피로 인해서이다. 사람들이 미쳐서 달고나 커피를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고, 그 재료가 카누였다. 그렇게 카누를 사야 한다는 협박에 못 이겨 주문하게 되었다.

   더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방법은 훨씬 많다. 원두를 주문했어도 되었을 것이고, 마스크를 쓰고 장갑도 끼고 집 맞은편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시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를 꺼리게 된 것은 오랜 감금 기간 동안 미각보다 안정을 중요시하도록 형상이 바뀌었음이 아닐까 싶다. 카누 3개를 물에 타고, 컵 가득 얼음을 넣어 그 위에 카누 물을 부으면 반나절 동안 마실 수 있는 커피가 된다. 더불어 카누 3개를 물에 타고 꿀 약간을 넣고 큰 얼음 하나를 넣어 세게 흔들면 괜찮은 비주얼의 사케라또가 된다. 200미리 우유에 카누를 한 개 넣으면 정확한 비율의 카페라테가 된다. 나가지 않아도 비주얼이 괜찮은 커피는 마실 수 있다. 달고나 커피도 비슷한 뉘앙스일 것이다.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기간이 길어지며, 작업도 미각보다 안정을 찾는 형상으로 길이 바뀌었다. 밖에 나가 재료를 살 수도 없고, 세미나나 오프닝도 참석할 수도 없으니, 집에서 할 수 있는 작고 아기자기한 작업을 시작했다. 모든 것을 아이패드 미니 5세대로 해결하고 있다. 대체제는 원본을 대체하지 못한다. 그러나 대체제는 위급 상황에 원본이 가진 필수적인 수행 요소를 충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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