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주간 사무직 직장인을 다루는 작업을 진행하려다 말았다. 코로나 19 문화예술인 재난지원사업에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안 하는 것이 더 이득일 것으로 생각해 그만뒀다. 작업을 진행하며, 사무직 직장인이 가장 가깝게 생각하는 사물이 무엇인지 조사했었다.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사물은 모니터였다. 가만 생각해보면 웬만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사물은 모니터다. 모니터를 넓은 범주로 생각해 화면이라 한다면, 우린 아침을 시작할 때 화면을 보고, 잠들기 전에 화면을 본다. 인류의 화면에 지배당한 현실을 다루는 작품은 2010년대 한국 미술사의 주요 흐름이었다. 내가 존경하는 윤원화 비평가가 2010년대 한국미술사를 마무리하며 출간한 책의 제목은 <그림, 창문, 거울(2018)>이었다. 2020년을 맞이하며 난 현대인의 미래에 대한 기대에 질린 모습을 묘사했다. 2010년대가 미래에 체화된 세대였다면, 2020년대는 미래에 질린 세대였다고 생각했다. 미래에 질린 세대의 대표로 선정한 것이 직장인이었고, 난 직장인이 가장 체화하고 있고, 질려하고 있는 , 어떤 이는 질린지도 모르고 있는 사물을 모니터라고 보았다. 결국 다시 화면으로 회기한 것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구글에 '직장인 필수'를 검색했었다. 직장인에게 필수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구글 이미지에 검색하니 전부 엑셀 캡쳐 화면이 나왔다. 사무직 직장인에게 체화된 요소는 엑셀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2010년이 화면, 모니터에 집중한 것은 동시대의 외형만을 다뤄왔기 때문이 아닐까. 우린 내부의, 그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다루고, 무엇을 하고 있는 지를 알 필요가 있다. 난 그들을 직장인이라 칭하고, 엑셀을 사용한다고 칭하고, 질려 좌절하고 있다고 상정했다. 이와 같은 상정은 또 다른 동시대의 외형을 모사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모니터의 외형을 타파하고 내부를 살피는 것이 2020년대의 목적이라 생각했으나, 이 작업은 모니터로 돌아오고 2010년대의 작업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만뒀다. 사물은 외형을 담고, 사용자와 사물의 결합이 엑셀 내의 내용과 같은 내부를 만든다. 사물만을 다루는 것은 끝났다. 직장인과 사물의 관계를 알기 위해 가장 먼저 모니터를 부숴버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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