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81) 썸네일형 리스트형 먼지 20.2.26. 어제 이후로 무엇이 사물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쉽사리 무언가를 사물이라 말하기 어려워졌다. 먼지에 어떤 종류의 미생물과 세균과 바이러스들이 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먼지가 사물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본능의 힘을 빌어 오늘은 먼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먼지는 다양한 종류로 존재한다. 우리의 수명을 열심히 줄여주고 있는 초미세먼지부터 시작해 빗자루에 달라붙는 먼지 덩어리까지 다양한 형질을 가지고 있다. 또한 먼지의 구성 요소를 살펴보면 같은 먼지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지 미안할 정도로 먼지 각 개체별로 매우 다양한 구성을 꾸리고 있다. 이렇게 흥미로운 먼지는 바이러스와 세균, 중금속 등을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적으로 간주되었다. 적으로 간주되어서인지 우리는 먼지의 매력적인 구성 요소와 형질을 .. 커피 20.2.25. 새로운 질문이 도래했다. 과연 어디까지가 사물인 걸까. 만약 음식을 사물이라고 친다면, 생물도 사물이 될 것이다. 생물에서 파생된 것 중 하나가 음식이기 때문이다. 생물이 사물이 된다면 사람도 사물이 되고 만다. 사람은 생물이기 때문이다. 커피가 사물이라 가정한다면, 사람마저도 사물 중 하나가 되고 만다. 사람은 그 어떤 사물보다 분류가 세분화되어 있기에, 사람이 사물이 되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 된다. 어디까지가 사물일까. 사물의 경계에 대한 고민을 갖기 이전에 '비둘기'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자연스럽게 생물을 하나의 사물로 본 것이다. 그러나 비둘기가 사물이라면 커피도 사물이 된다. 오늘 다루는 사물은 어쩌면 사물이 아닐지도 모를 커피이다. 커피는 대략 6회에서 9회의 가공을 거쳐 .. 고무장갑 20.2.24. 고무장갑이 식상한 소재가 되어버린 것은 한 래퍼 때문이다. 고민을 해봤다. 매일 하는 같은 고민이다. 바로 심상과 감각 그리고 사물성은 미신이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어쩌면 이와 같이 심상이나 감각을 씌워 읽는 행위가 사물에게 하나의 프레임을 씌우거나 선입견을 생성하는 행위가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고무장갑이 식상한 소재가 되어버린 것은 그 래퍼에 의해 하나의 편견이 생겨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무의식 중에 과거로부터 쌓여온 프레임들이 덫이 되어 대상을 심상으로 가둬버렸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각자가 학습한 프레임이 일전에 종이 가방을 다루며 이야기했던 개인 간의 감각의 차를 만들어 낸 것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고무장갑의 애매한 색깔은 유머의 요소로 사용되어 왔다. 부엌.. 종이 가방 20.2.23. 종이 가방은 선물을 받는 감각을 준다. 간단하게 말해 설레는 감각을 준다. 그러나 종이 가방은 일회용품의 하나로 간주되며 불편한 감각을 주기도 한다. 물론 어떤 일회용품보다 재활용 가능성이 뛰어나고, 한때 환경 운동의 일환으로 비닐봉지의 대체품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종이 가방도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적받는 사물 중 하나로 자리 잡으며 불편한 감각을 주는 사물이 되었다. 그럼에도 종이 가방 안에 들어있는 것을 여는 행위는 선물을 여는 행위임에 설렘을 감출 수 없게 한다. 모든 선물은 보자기 혹은 종이 가방을 통해 전달된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선물 상자 자체를 주는 방식으로 전해진다. 내가 궁금한 점은 왜 종이 가방이 선물을 전달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지만 그 이유를 찾기 위한 글을 쓴.. 문 20.2.22. 을 봤다. 그래서 오늘은 문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문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문이 열려있다면 공간이 확장된다. 문이 닫혀있다면, 이는 공간을 확장시키거나 확장시키지 않는다. 에 나오는 '어디로든 문'은 이와 같은 중첩 상태를 매우 흥미롭게 만들었다. 은 열리기 전까지 뒤에 무슨 공간이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용자의 생각이 확실해졌을 때 어디로든 문은 정확한 어딘가를 향한다. 그러나 문이 열릴 때까지 사용자는 자신의 생각이 정확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을까. 만약 에 나오는 '잭 스패로우의 나침반'처럼 어디를 원하지 못할 때 '어디로든 문' 은 '나침반'처럼 정상 작동하지 못할까. 에서는 주인공 '노진구(노비 노비타)'가 결정 못하고 문을 열 때, '신이슬(미나모토 시즈카).. 타이어 20.2.21. 타이어와 같은 둥글고 넓적한 사물은 다루는 것에 있어 어려움이 많다. 캔버스를 완벽히 채울 수 없으며, 안정적이게 채우지도 못한다. 그래서 타이어와 비슷한 형식의 가로로 긴 타원형 물체는 화면에 혼자 등장하지 못한다. 타원이 되는 순간 우리가 알고 있는 차크라의 형태가 배반당하면서 강력한 흐트러짐을 자아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타원은 기준점(정점)이 두 개이기에 그것이 두드러진다면 구도상 하나의 선만 있는 형상, 즉 공간감이 약해지는 형상으로 우리에게 인식된다. 타원에 높이가 생긴다면 기준점이 한 개 더 생기는 꼴이 되는 것이기에 안정적인 형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것도 어느 정도의 범위 내에서의 이야기일 뿐 너무 높이가 낮거나 높아진다면 다시 하나의 선으로 인식되는 양상을 보여 준다. 그래서 치명적.. 족자 20.2.20. 족자를 고른 이유는 족자를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거지같은 그림이 생겨나고 말았다. 이게 진짜 캔버스가 아니라 픽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위로해준다. 족자는 길다. 그리고 난 긴 사물을 좋아한다. 동양화는 배워본 적도 그려본 적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아서 족자는 내게 작품의 심상을 주지 못한다. 족자는 내게 흥미로운 사물로만 다가온다. 동양화와 전혀 연관이 없는 내가 족자를 흥미로운 사물로 본다면, 미술과 관계없는 사람들도 내 작업물을 흥미로운 사물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렇다. 내 작업물은 단지 흥미로운 사물이거나 흥미롭지도 않다면 그냥 망한 사물에 불과한 뭔 덩어리일 뿐이다. 그러니 미술은 흥미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조건이 되어버린다. 나머지 부.. 책상 20.2.19. 의자 같은 것 중 의자보다 나은 것으로 책상이 보였다. 그렇다고 책상이 감각적으로 의자보다 훨씬 나은 존재라고 할 수는 없다. 의자는 심상이 강제적으로 주입된 사물이고, 책상은 그저 그 옆에 있거나 같이 있는 배경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책상이 그나마 나은 이유는 책상이 의자보다 덜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책상과 의자를 비교해보면 심상은 소모되는 것이라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책상이 의자보다 감각을 가진 사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책상이 의자보다 식상하다는 심상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 것으로 느껴진다. 책상은 의자보다 훨씬 적은 용도의 동사로 탄생했다. 책을 올려놓고 필기를 하거나 책을 읽기 위해서인데, 사실 이것은 책상이 없어도 가능하다. 책상은 앞서 말했듯이.. 커튼 20.2.18. 오늘은 언제나 나의 마음에 남아 속 썩이는, 그리고 영원히 안쓰러움을 선사하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커튼은 속임수였다. 그 존재는 바로 파생체이다. 살면서 몇 번이나 언급했는지 모르겠으며 내겐 의자보다도 더 많은 소모를 당한 존재가 바로 파생체이다. 파생체는 생성 원리부터가 불쌍하다. 무언가로부터 떨어져 나와 번식한 것, 혹은 무언가를 모방한 것을 파생체라고 부른다. 그 존재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도 모르는 틀을 갖는다. 그리고 결국 소모되거나 영원히 남아 원체의 역할을 대신한다. 모든 석상은 사실 파생체이다. 그리고 모든 모형들, 모든 작업물들, 일회용품, 주식, 도로까지 모든 것이 파생체이다. 파생체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은 삼중수소부터 커튼까지 영원히 나를 괴롭게 만든다. 내가 그들에게 해.. 의자 20.2.17. 의자만큼 식상한 사물이 어디 있을까 싶다. 사실 한국에서 의자가 상용된 역사는 여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짧다. 그럼에도 그렇게 짧은 순간에 어떻게 의자는 소재로써 식상함에 이를 수 있게 되었을까. 의자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겨우 '앉는다'라는 간편하고 단순한 용도를 가진 것에 비해 의자의 형태는 너무 다양하고, 그 범위도 매우 세분화되어 있다. 심지어 의자를 만들 때에 등판 혹은 앉는 부분의 각도 10도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의자의 식상함은 의자에 대한 전 지구적 관심이 용도를 넘어서 너무도 다양화되고 세분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관심은 예술계에서도 필요 이상의 관심을 받는 존재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겨우 앉는 것에 불과한 사물에 어째서 사람들은 자신의 심상이나.. 쿠션 20.2.16. 쿠션과 베개의 차이는 무엇일까. 네이버에 검색해 봤다. 쿠션과 베개의 차이에 관해 내기를 한 사람의 질문이 있었다. '쿠션은 대게 정사각형 사이즈에, 배게에 비해 부풀어진 모양을 하고 있고, 베개는 반면 베고 눕기 편하도록 가로로 긴 형태에 목에 무리가 안 가는 높이를 갖고 있는 것이 그 차이다.'가 답변이었다. 그렇다면 쓰임새에 따른 차이는 없는가. 안타깝게도 쓰임새에 관해서는 지식인에 답변이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쿠션은 무릎에 올리고 베는 것, 혹은 베개를 보조해주거나 소파를 장식할 때 쓰는 것'이라는 검색 결과가 나왔고, 베개는 '누워서 잘 때 머리를 받치는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모양과 쓰임에 따른 설명에도 여전히 쿠션과 베개의 차이에 대한 의심이 없어지지 않았.. 석상 20.2.15. 석상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오랫동안 그 형식을 유지해 온 형식 중 하나이다. 여전히 석상은 만들어지고 있고 나라가 망해도 없어지지 않는 유일한 유물이자 작업물이다. 석상의 영속성은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고, 석상을 만들고 있는 우리는 석상의 그 영속성을 믿는다. 이는 종교적인 측면으로까지 영향을 미친다. 석상이 없는 종교는 없다. 종교 또한 영속성을 원하고 그들의 믿음이 후대에 이어지는 것을 목표 중 하나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선택지가 바로 석상이었고, 석상은 영속성을 상징하도록 뇌리에 박혔고, 실제로 석상은 영속을 이뤄내고 있다. 석상 외에 여전히 남아있는 다른 재료들 혹은 소재들은 현대에 오면서 수많은 변모와 변칙적 진화를 겪어왔다. 그리고 그 진화의 과정을 통해 시간성을 .. 스노우 보드 20.2.14. 스노우 보드를 세워두었다. 세워진 스노우 보드는 긴 사물이 된다. 누워있는 스노우 보드는 긴 사물이 아니었던 것일까. 긴 사물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긴 사물은 나에게 있어, 그러니까 주관적 입장에서 쉽고 안정적인 상태이다. 그리고 길지 않은 사물은 어려운 상황이다. 나의 상태는 긴 사물일 때가 정답이다. 무언가와 함께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스노우 보드가 긴 사물이 되려면 그 ‘함께’를 인정해야 한다. 내가 긴 사물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 ‘함께’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함에 있다. 그리고 그 인정하지 못함의 이전에 있어서 내가 긴 사물이 되지 못한 이유는 스노우 보드가 사실은 세워질 수 없는 이유와 같다. 스노우 보드는 눈이 있어야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겨.. 가방 20.2.11. 사고 싶은 가방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간다. 이 시점만큼이나 가방의 원론적 문제에 대해 고찰해야 할 때는 없다고 판단한다. 가방은 개인의 이미지를 단정 짓는 가장 마지막 포인트이자, 가장 큰 포인트이기 때문에 그 어떤 잡화보다 신중을 다해야 한다. 개인의 이미지를 단정 짓는 가방은 개인에게 있어서 그리고 그 개인을 둘러싼 주변인에게 있어서 큰 민폐가 될 요인이기도 하다. 자신의 이미지와 알맞지 않은 가방을 멘 경우만큼 갑작스러운 괴리감을 전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가방과 마찬가지의 최전선에 있는 잡화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것이 안경이다. 얼마 전 나는 새로운 안경을 맞추고 주변인들에게 큰 괴리감을 준 적이있었다. 이에 가방의 선택에 좀 더 신중을 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무.. 대걸레 20.2.10. 대걸레는 과거 대나무로 만들어졌던 것에 기원이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대나무 빗자루로 잔존한다. 오늘은 글을 쓰고 싶지 않아 비밀을 이야기하려 한다. 바로 이 글들이 하나의 알고리즘에 의해 써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알고리즘은 7일에 한 번씩 업데이트된다. 그리고 그 첫날이 아마 내일인가 모레이다. 내일은 다시 열심히 써야겠다. 문고리 20.2.9. 문고리가 정말 필요한지 모르겠어서 이 글을 쓰려한다. 문고리는 여닫이 문에 달려있어 문을 밀거나 당기는 용도로 쓰인다. 특히 당기는 용도로 문고리는 필수적인 요소로 인식된다. 문고리는 나에게 어떠한 추억도 만들어 주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사물 중 하나이다. 어떠한 추억도 만들지 않기란 참 운이 좋아야 한다. 요즘은 혹은 내가 태어나기 전 즈음부터 문고리가 필요 없는 여닫이 문의 디자인 많이 생겨났다. 무조건 밀기만 하는 식의 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이제는, 문고리는 오로지 장식을 위한 요소인 것일까? 문고리가 장식품으로써 자리 잡은 지는 아마 문고리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일 것이다. 문고리는 우리에게 필요 없고, 나에겐 더욱이 어떤 추억도 없는 물건이다. 그렇게 꼬리뼈와 같이 남아 겨우 있는 척.. 속옷 20.2.8. 속옷은 더러우면서 매혹적인 이중적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이중성에 대해 고민해 보기로 했다. 속옷은 신체의 가장 깊숙하고 가까운 곳을 덮는 옷이다. 속옷은 신체에서 가장 밀접한 의류이기에 우리에게 비위생적인 상황 혹은 거의 벗은 상황을 연상시킨다. 언제부터 속옷은 우리에게 이러한 이중성을 심어준 것일까. 근데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속옷은 당연히 위생상의 문제로, 그리고 옷을 더 오래 입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심지어 나는 개인적으로 속옷에 대한 에로티시즘 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어쩌면 '속옷은 더러우면서 매혹적인 이중적 면모를 가지고 있다.' 라는 첫 줄은 나에게 있어서 틀린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첫 줄을 '속옷은 더럽다.'로 바꿔야겠다. 속옷은 더럽다. 속옷이.. 클립 20.2.7. 클립이 눈 앞에 있어서 노란 클립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클립은 눈 앞에 있지만 더러워서 별로 만지고 싶지가 않다. 클립이 더럽기에 클립에 대해 생각해 보기론 했어도, 내게 클립은 너무 먼 존재로 생각된다. 근데 진정 클립이 더러울까. 클립을 만지지 못해 클립이 더러운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더러운게 아니라 색깔이 원체 회갈색인 클립일지도 모른다.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난 클립을 만지지 않았기에 클립은 더러운 것이 되었다. 그렇게 클립은 더러운 것이 되었다. 만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듯이 보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또한 존재한다. 그리고 나의 거리에서 클립의 먼지는 보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클립이 내게 주는 혐오감은 클립의 색이 준 것이지 진정 더러움이 준 것이 아닐 가능.. 물병 20.2.6. 오늘은 매우 단순하고 모두가 알만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물을 마시는 방식에는 여러 방식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편의점에서 500ml 페트 식수를 사서 마실 수도 있고, 정수기에서 컵으로 물을 따라 마실 수도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방식은, 물을 끓이고 그 물을 병에 담아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마다 그 물을 컵에 따라 마시는 것이다. 왜 이와 같은 방식이 존재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난 왜 병에 담긴 물을 컵에 따라서 마실 때 가장 물을 마시는 기분이 나는 것일까. 나는 이 이유를 노동과 맛의 결부 가능성에서 찾았다. 커피를 마실 때 우리는 공들여 만들어 마시는 방식과 10초만에 만들어 마시는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이때 이 두 가지 방식은 맛에서의 차이를 발생시킨다. 공들여 만들어 마시는 방식이.. 비둘기 20.2.5. 쉽게 말할 수 없는 주제로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어 유감을 표하며 글을 시작한다. 우리에게 길은 매일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있는 공간으로 느껴진다. 이 공간을 두려움으로 채우는 가장 큰 요소는 다름 아닌 비둘기일 것이다. 비둘기는 우리와 너무도 친숙해, 아무리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정말 위협을 느끼는, 우리가 위협을 느끼는 거리까지 가까웠을 때 비둘기는 위협적인 날갯짓을 한다. 누가 비둘기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1979년 서대문구에서 은평구가 분구되며 비둘기는 은평구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서울 상징의 25 분의 1을 비둘기가 차지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또한 88 올림픽의 비둘기 대란을 시작으로 서울은 비둘기의 본고장이 되었다. 물론 시드니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과연 언제부터 우린.. 참기름 20.2.4. '백설'의 시그니처 참기름은 '진한 참기름'이다. 그리고 '오뚜기'의 시그니처 참기름은 '고소한 참기름'이다.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