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는 종류가 정말 다양하다. 현대에 와서 바구니는 플라스틱 혹은 철제로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으니, 그 종류가 크기와 용도에 의해 가장 다양하게 나뉠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바구니의 종류를 나누는 기준은 크기와 용도로 나누기엔 무리가 있다. 과거의 바구니는 작게 나누자면 재료에 의해 크게 나누자면 지역에 의해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지역별로 다양한 섬유질 재료들이 존재하고 섬유질 재료들을 엮은 것이 바구니이니, 바구니는 섬유질의 다양성만큼이나 다양한 종류가 존재했다. 이 수많은 바구니 중 내 머릿속의 대표 바구니는 바로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 가지고 가서 학교 책상 서랍 안에 넣고 사용하던 노란색 바구니이다.
왜 수많은 크기와 용도와 재료의 바구니 중에 이것만 그려질까. 이 예시는 무심상 사고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있다. 무심상 사고란 키위를 마음의 눈, 즉 뇌로 형상화시키지 않고도, 키위라는 문자 자체로 키위임을 사고할 수 있고, 키위가 과일이라는 사고까지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의 머릿속의 바구니는 초등학생 때 쓰던 노란 바구니로 정해져 있고, 문자 '바구니'는 초등학생 때 쓰던 바구니를 바로 이끌어낸다. 혹은 문자 '바구니'는 초등학교 때 쓰던 바구니다. 키위도 마찬가지다 내 머릿속에 키위는 fuzzy kiwifruit이고, 문자 '키위'는 fuzzy kiwifruit이다. 이 문자와 이미지를 매치하는 과정을 심상화라고 하고, 무심상 사고는 그 심상화 과정이 없이도 사고를 진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과연 그렇게 우리가 사고를 하고 있을까.
문자에 맞는 특정 사물이 정해져 있는 것을 심상화하는 과정이라고 딱 잘라 말하긴 애매하다는 판단이 서기도 한다. 왜냐하면 심상화란 그 단어를 형상화하는 과정이 동반되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 자동적 1 대 1 매치 형식의 사고는 심상을 도출한 사고라기보다는 문자를 단어로 바꾸기 위한 기계적 가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문자를 단어로 바꾸는 이 매칭이 심상화라면 정말 쉽게 내가 꿈꾸던 심상의 기계화가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자동적 매치 형식의 사고는 형상화의 과정을 거쳤다고 명확히 말할 수 없기에, 때에 따라 무심상 사고라고 말할 수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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