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량은 파생체이다. 숫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개수를 세는 것을 원체로 하는 파생체일 수 있다. 혹은 시각과 근육에 의존해 느끼는 것을 원체로 하는 파생체일 수도 있다. 파생체의 위상이 원체의 위상을 전도하는 현상은 모든 파생체에게서 일어나는 일이다.
파생체와 원체의 위상이 전도되는 빈도수가 많아지고 파생체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파생체는 생명을 얻는다. 균형감을 대체한 수평자가 그렇고, 공간감을 대체한 눈금자가 그렇다. 인스턴트커피가 커피를 전복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와 반대되는 상황이라 읽을 수 있다. 스마트폰은 이와 다른 진화라는 경로를 겪었다. 진화와 파생의 차이는 무엇인가.
파생체의 예시로 가장 많이 다뤄온 사물, 모형 키위는 대표적인 파생체의 전복을 위한 노력과 실패를 보여주는 사물이다. 이는 키위의 모방체로서 짧게는 10분 길게는 2시간가량 키위의 위상을 전복한다. 난 이렇게 전복의 횟수와 정도가 늘어나면서 어느 순간 눈과 자의 관계와 같이 키위에서 해방된 모형 키위가 생성될 것을 기대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모든 사물의 생성 원리는 바로 이것에 있다고 보았다.
진화 또한 파생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여겼다. 호모 에렉투스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된 것은 호모 에렉투스의 위상을 호모 사피엔스가 전복했기 때문으로 여겼다. 대다수를 파생체로 여기는 것은 사물의 역사를 대체제의 역사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인류의 진화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화되고 있는 듯이 여겨지는 스마트폰의 탄생 과정은 전복이 없다. 스마트폰은 지속적인 대립 상품 간의 경쟁을 통해 진화를 이어나간다. 물론 갤럭시 S10을 아이폰 11이 전복하고 이를 갤럭시 S20이 전복하는 식의 미시적인 파생 행동은 지속적이었으나 진정한 원체, 즉 핸드폰에 대한 전복은 일어난 적이 없다. 눈과 자의 관계, 그리고 키위와 모형 키위의 관계와 같은 거시적 파생 행동을 통한 원체의 전복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류의 역사 또한 미시적 파생 행동은 있으나 원체에 대한 전복이 없는 진화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어쩌면 자 또한 지워진 역사 속에서 미시적 파생 행동에 의해 생성된 눈의 진화 형태가 아닐까.
사물의 생성 원리를 거시적 파생 행동에 기반한 '파생'과 미시적 파생 행동에 기반한 '진화'로 나누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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