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후로 무엇이 사물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쉽사리 무언가를 사물이라 말하기 어려워졌다. 먼지에 어떤 종류의 미생물과 세균과 바이러스들이 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먼지가 사물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본능의 힘을 빌어 오늘은 먼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먼지는 다양한 종류로 존재한다. 우리의 수명을 열심히 줄여주고 있는 초미세먼지부터 시작해 빗자루에 달라붙는 먼지 덩어리까지 다양한 형질을 가지고 있다. 또한 먼지의 구성 요소를 살펴보면 같은 먼지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지 미안할 정도로 먼지 각 개체별로 매우 다양한 구성을 꾸리고 있다. 이렇게 흥미로운 먼지는 바이러스와 세균, 중금속 등을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적으로 간주되었다. 적으로 간주되어서인지 우리는 먼지의 매력적인 구성 요소와 형질을 무시한 채 먼지를 먼지라는 이름 하나로 묶어 취급하고 멸시해왔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먼지는 호흡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애초에 먼지 자체가 기관지를 넘어가기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듯이 우릴 괴롭히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심지어 흡연보다 몸에 해로운 미세먼지가 일상이 된 환경에서 우리가 먼지를 사랑할 포인트는 없다. 더불어 청소할 때에도 문제이다. 책장 위나 가구 아래를 오랜만에 청소할 때면 혐오스러운 진한 회색으로 걸레에 묻어 나오는 먼지는 마치 바퀴벌레 같다. 우리가 먼지를 보며 혐오감을 느끼는 이유는 서로 적대 관계인 종속영양생물과 독립영양생물 간의 몇십억 년을 거친 전쟁의 역사일 것이다. 몇십억 년의 전쟁을 통해 우리는 서로 아주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되었고, 먼 과거 형제였을지도 모를 나와 먼지의 관계는 틀어질 대로 틀어지고 말았다. 이제는 좀 더 착한 우리가 먼지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줄 때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피하고 그들은 위협하지만, 적정선을 가지고 먼지를 다시금 살펴본다면,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붙여준다면 몇십억 년 뒤에 누가 살아남을진 모르겠으나 현재의 먼지는 지금보다 더 엄격하고 상냥한 대우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먼지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실이다. 제발 나의 영역에 먼지가 쌓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그럼에도 먼지는 충분히 흥미로운 연구 소재이다. 먼지에 대한 연구가 더 많이 이뤄지고 내가 그 연구를 접한다면 훗날 더 디테일하게 먼지의 심상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 일이 내 일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일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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