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장갑이 식상한 소재가 되어버린 것은 한 래퍼 때문이다. 고민을 해봤다. 매일 하는 같은 고민이다. 바로 심상과 감각 그리고 사물성은 미신이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어쩌면 이와 같이 심상이나 감각을 씌워 읽는 행위가 사물에게 하나의 프레임을 씌우거나 선입견을 생성하는 행위가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고무장갑이 식상한 소재가 되어버린 것은 그 래퍼에 의해 하나의 편견이 생겨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무의식 중에 과거로부터 쌓여온 프레임들이 덫이 되어 대상을 심상으로 가둬버렸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각자가 학습한 프레임이 일전에 종이 가방을 다루며 이야기했던 개인 간의 감각의 차를 만들어 낸 것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고무장갑의 애매한 색깔은 유머의 요소로 사용되어 왔다. 부엌에서 사용되는 것이 그렇게 더러운 유머적 요소로 사용된다는 것이 너무도 저질스럽게 느껴졌으나, 반복적으로 유머적 요소로써의 고무장갑을 접하면서 그 유머에 불쾌하지만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더불어 그 래퍼가 고무장갑을 유머러스한 심상을 가진 사물로 종결시켜 버렸다. 고무장갑의 애매한 색상이 웃기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고무장갑은 김장을 할 때 없어선 안 된다는 기준에서 신성 시 되어야 마땅하다고 볼 수도 있는 사물이다. 이 또한 나의 경험을 바탕에 둔 프레임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심상과 감각이 이와 같은 선입견에 의해 생성된 것을 본다면,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된 감각은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경험은 축적되어 후세로 이어진다. 죽은 뒤의 우리는 후손이 가진 선입견 중 하나로 삶을 영위하게 될지도 모른다. 고무장갑이 유머러스한 심상을 가진 소재라는 것은 나의 세대에서 생겨난 새로운 선입견이고, 우린 고무장갑의 심상에 대한 선입견을 후세에게 전달하며 심상 중 하나로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유전자에 각인된 심상이란 내 이전 세대가 만들어낸 심상 중 남은 것이고, 그 심상들이 선입견으로써 영위하고자 하는 선대의 목적으로 생성된 것이라면 결론적으로 심상이란 공동묘지에서 시체를 하나하나 꺼내 보는 행위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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