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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

문 20.2.22.

   <도라에몽>을 봤다. 그래서 오늘은 문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문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문이 열려있다면 공간이 확장된다. 문이 닫혀있다면, 이는 공간을 확장시키거나 확장시키지 않는다. <도라에몽>에 나오는 '어디로든 문'은 이와 같은 중첩 상태를 매우 흥미롭게 만들었다. <어디로든 문>은 열리기 전까지 뒤에 무슨 공간이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용자의 생각이 확실해졌을 때 어디로든 문은 정확한 어딘가를 향한다. 그러나 문이 열릴 때까지 사용자는 자신의 생각이 정확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을까. 만약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잭 스패로우의 나침반'처럼 어디를 원하지 못할 때 '어디로든 문' 은 '나침반'처럼 정상 작동하지 못할까. 

   <도라에몽>에서는 주인공 '노진구(노비 노비타)'가 결정 못하고 문을 열 때, '신이슬(미나모토 시즈카)'의 샤워실로 향하는 다소 저질스러운 설정을 갖고 있다. 무의식 중에 말 못 할 정도로 바라는 취약한 곳으로 향한다는 설정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각자의 결정하지 못한 그곳은 어디가 될 수 있을까. 화면에서 문은 전통적으로 공간의 확장 혹은 공간의 유무에 대한 의문을 자아내는 배경으로 이용되어 왔다. 그리고 그 공간에 대한 의문은 당시 그 그림을 그리던 사람과 대상만 알고 있다는 점을 통해 대상이 놓여있는 공간마저도 어디일까 하는 신비감을 자아내는 역할로 이용된 예시도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문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상상하게 만든다. 열기 전까지 그 공간이 어떤지 알 수 없다. 열기 전까지 알 수 없다는 식의 소재로 문은 TV 프로그램 '신동엽의 러브하우스(2000)'와 '구해줘! 홈즈(2019)'에서 사용된 바 있다. 문을 열 때마다 놀라는 식으로 이용됐다. 이 외에도 여러 한국 예능에서 문을 여는 행위는 '신동엽의 러브하우스'의 패러디 버전으로써 많이 사용되었다. 문을 여는 행위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선물 포장을 푸는 감각을 전해주었다. 

   문이 닫혀 있을 때의 문은 선물을 풀지 않은 기대감을 주는 감각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며, 화면 속의 닫힌 문은 궁금증과 답답함의 감각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화면 내의 문은 '양자역학적 드로잉'의 발판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양이 든 상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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