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있을까 싶다. 휴지로 뒤처리를 한다. 휴지가 손에 묻는 것을 막아주고 변을 잘 닦아준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 휴지의 구조는 변의 세균이 손에 묻는 것을 막아주지 못한다. 또한 휴지는 변을 완벽하게 닦아내지도 못한다. 휴지의 흰색을 통해 청결감을 줄 뿐이다. 어찌 보면 화장실에서 휴지를 사용하는 것은 허례허식 혹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휴지는 닦는 용도로 사용된다. 책상이나 바닥에 흘린 액체나 가루를 닦는 용도로 말이다. 그러나 휴지로 액체류를 닦을 때엔 휴지가 매우 많이 필요하고, 가루를 닦을 때에도 휴지에 가루가 달라붙지는 않는다. 더불어 완전히 닦였을지도 의문이다. 휴지는 온전히 허례허식 혹은 임시방편으로 존재할 뿐이다.
뒤처리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선 샤워가 필요하다. 액체류는 대걸레나 걸레로 닦고, 가루는 빗자루로 쓸어내는 것이 더 완벽한 처리 방법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휴지는 청결을 위한, 부적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휴지는 결국 누군가에게는 필요하다고 생각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사회적으로 필요 없는 사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휴지는 없어도 되는 사물일 수도 있겠으나, 휴지는 인류에게 부적보다 더 강력하게 청결함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 있다. 우리는 그 믿음에 의해 휴지 없이 살 수 없는 생태를 꾸려냈다. 여기서 특수한 지점은 휴지는 청결함의 부적이라 할 수 있겠으나, 정작 하얀 휴지를 볼 때에 청결함을 감각하진 않는 것 같다. 그 용도가 청결하게 만들어내는 것이지 그 자체가 청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 추측한다. 부적과 마찬가지이다. 부적 또한 부적이 상징하는 것을 부적을 시각한다 해서 파악하지는 못한다. 그 부적 자체가 그 감각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기에 부적을 믿게 되는 것이다. 휴지도 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알기에 휴지를 믿게 되는 것이지 휴지 자체가 청결함을 감각시키진 않는다.
언젠가 휴지는 사라질 것이다. 휴지에 대한 믿음은 다른 것으로 대체되고 그 실태를 파악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라지는 것은 휴지가 감각을 만들어내는 사물이 아닌 감각을 연상시키는 요소라는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다. 휴지의 감각은 파생체 생성 원리와 비슷하다. 감각을 직접 가지지 않고, 감각을 연상시키는 사물의 존재를 알았다. 그렇다면 휴지 자체의 심상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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