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스가 물체의 표면을 녹이듯 락스가 담긴 분무기의 내부는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락스가 들어있는 분무기를 사용한다면 플라스틱이 희석된 환경호르몬을 사방에 뿌리는 꼴이 된다.
분무기를 분사하는 것은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일 중 하나이다. 맑은 날 화초에 분무기를 분사한다거나, 분무기로 무지개를 만드는 것은 행복한 행동이다. 화장실 청소를 위해 분무기에 락스 물을 넣어 분사하는 것도 쾌감을 부르는 시각, 후각적 감각을 준다. 분무기의 형태도 한몫을 한다. 분무기의 밝은 혹은 고채도의 색상은 이 행위를 행복하게 인식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선택된 색상인 양 보인다. 분사되는 촉감은 새벽에 물안개 속을 뛰어가는 기분을 준다. 분무기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미스트를 이 촉감을 극대화시켜주는 물건이라고 판단한다.
영화 속에서 사용되는 분사의 형태도 이러한 효과를 준다. 영화 <20세기 소년 2>에는 생화학 무기를 전 세계에 설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고 생화학 무기가 분사될 때 쾌청한 분위기의 미스트와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어 전 세계의 멸망을 아름다운 멸망으로 묘사한다. 생화학 무기를 설치한 인물과 생화학 무기, 그리고 멸망하는 세계는 화장실에서의 우리를 소환한다. 락스 물을 분사하는 우리와 분무기, 그리고 곰팡이와 찌든 때의 멸망은 쾌청한 비극이다.
후추 스프레이에서도 이러한 쾌청한 비극을 느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후추 스프레이를 사용하는 상황은 생존력이 강력해야 하는 순간이기에 예외로 간주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다른 감각이 더 주를 이뤄야 하는 상황을 제외하고선 분사하는 행위는 확연히 쾌청한 느낌을 주는 상황이 맞다고 본다.
그리고 이 분사 행위가 다른 심상과 함께 엮일 때 새로운 감각으로 변환하는 것을 보면 분무기는 선선한 감각을 더 해주는 심상을 가진 사물임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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