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0.3.

이불 2020.3.1.

   사물 기록 <1일 10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한 사람의 습관을 모방한 것이다.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는 하루를 만들고 싶지 않아 이를 시작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 말에 동감하며 이를 시작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이 글들이 작업의 소재가 될 확률은 매우 낮으며 , 그렇다고 많은 사람이 이 블로그에 방문하게 될 확률은 더욱 희박하다. 사물의 심상을 빠르게 추출해내는 능력을 기르고 그 과정을 정립하기 위해 몇 개의 제약을 걸었다. 하지만 언제나 나의 작업이 그러하듯 쓰레기 같은 글들과 그 글보다도 더 수준 떨어지는 드로잉들만이 난무했고,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이나, 이 글들을 유의 깊게 지켜보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되려 안심을 주었다. 근 4주가 지나려는 이 시점에서 이 기록들이 더 나아지거나 내 필력이 나아지려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글을 통한 작업을 하고 싶었으나 내가 쓴 글들은 전혀 공감을 사지 못했고 매력적인 글도 되지 못했다. 내 작업이 보통 그렇듯 이 프로젝트도 자기 멸시와 충분한 노력으로 끝맺게 될 것이 눈에 선하다. 나의 과격하고 괴랄한 글들은 이미지들과 함께 더 빠른 속도로 연소되고 말 것이며, 모두 연소되고 남은 잿더미 속의 나의 모습도 너무 선명하다. '충분하다.'라는 말을 할 자격이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 따로 존재하고 그 부류에 난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 괴로운 쓰레기를 만드는 프로젝트 또한 '구린 오브제 리스트'에 포함될 때까지 지속되고 말 것이다. 언어적인 능력이 떨어지고 사실 심상을 감각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이 프로젝트가 진정으로 갖는 의의를 나는 느끼지 못한다. 내 작업에 대한 허풍은 들킬 대로 들켰고, 이젠 잿더미 속의 내가 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냄새가 코를 감싼다. 그럼에도 하루에 뭐라도 하고 있다는 착각을 만들어내야 한다. 

   오늘의 사물은 이불이었고, 이불의 무거움을 말할 필요가 있는지 싶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2020.3.'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엌칼 20.3.6.  (0) 2020.03.06
구슬 20.3.5.  (0) 2020.03.05
가위 20.3.4.  (0) 2020.03.04
분무기 20.3.3.  (0) 2020.03.03
릴 호스 20.3.2  (0) 2020.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