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알게 된 친구 중에 전주에서 온 친구가 있다. 전주에 살면 전주비빔밥 먹어 봤냐고 물어봤다. 한 번도 사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전주에 사는 사람들은 전주비빔밥을 잘 사 먹지 않는다고 한다. 왜 자신들의 명물을 즐기지 않는 것일까. 난 서울에 살면서 경복궁을 한 달에 한 번씩은 간다. 그냥 산책하러 간다. 그러나 이 친구는 전주 한옥마을조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 곳에 왜 가냐는 듯이 말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남산타워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옛말에 집 근처에 있는 곳은 쳐다도 안 본다는 말이 있듯이 집 근처의 명물은 잘 즐기지 않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가 보다. 하지만 난 서울의 맛있는 곳들에 관심이 많고, 그 맛집들을 즐긴다. 나의 기준에서는 맛있는 음식은 맛있는 음식일 수밖에 없기에 그 음식이 지역 명물인 것과 상관없이 즐길 것만 같다. 왜 이 친구는 전주비빔밥을 먹어 보지 못한 것일까.
전주비빔밥이 뭘까. 전주비빔밥은 전주에서 만든 비빔밥이겠지. 그럼 전주에서 밥에 참기름, 간장, 계란후라이, 김자반 올리고 비벼 먹으면 그것도 전주비빔밥인 걸까. 전주에서 먹는 레트로트 비빔밥도 전주비빔밥일 수 있다. 혹, 전주 편의점에서 파는 전주비빔 삼각김밥은 전주비빔밥일까. 이 친구가 전주비빔밥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을 리는 없다. 전주에 살면서 이 친구에게 전주비빔밥은 삶에 농후하게 스며들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너무 농후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 친구가 본가에서 비빔밥을 만든다면 그것은 전주비빔밥이 된다. 이 친구가 서울에 올라와 나에게 비빔밥을 해준다면 그것은 '을지면옥'과 다를 것이 없다. 혹은 화교의 중국식당과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 이 친구는 이 친구 자체로 전주 사람이고 전주 사람이기에 이 친구가 만든 비빔밥은 전주비빔밥이 될 수 있다.
이건 신분의 한계를 상징하는 일련의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난 연신내에 거주하는 2n세 휴학생이다. 이러한 신분의 내가 하는 어떤 행동은 타인에게 특정 행동으로 읽힌다. 신분은 그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의 활동을 정립한다. 이 친구는 전주비빔밥을 만들고 싶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이 친구가 만든 비빔밥은 전주비빔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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