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채소는 고수다. 다양한 채소들을 좋아하지만 쌈을 싸 먹을 때 가장 좋은 것이 고수인 것 같다. 한 번은 어떤 기회였는지 고수 씨를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지난해 이맘때쯤 한 번 심었었다. 성인이 되고 혹은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으로 씨를 심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 서오릉 인근 주말 농장에서 여러 채소들을 키웠었다.
내가 기른 고수는 종자가 일반 고수와 달랐던 이유였는지, 혹은 물을 너무 적게 줬던 건지 내가 알고 있던 고수 이미지에 비해 엄청 빈약했다. 이파리가 일반적으로 보던 고수에 비해 훨씬 가냘팠으며 심지어 꽃도 폈는데 꽃마저도 인터넷에 검색해본 고수 꽃 사진에 비해 너무 작고 아담했다. 그리고 줄기도 힘이 없어 옆으로 누워서 자랐다. 그게 고수인가 의심하면서 키웠다. 고수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뜯어먹어 본 후였다. 그것은 정확히 고수 맛이었다. 수분이 모자라서였던 것인지 뭔가 농축된 것 같이 일반 고수에 비해 세 배정도 진한 고수 맛이었다. 물을 줄 때 가끔 쓰다듬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고수 향이 나긴 했었다. 고수풀 자체에서 향이 날 정도니 확실히 양분이 농축되어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고수는 오래 못 가고 시들었다. 많이 뜯어먹긴 했지만 꽤나 아쉬웠다. 초등학생 때는 농장에 채소를 엄청 많이 심어서 하나하나에 그리 교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때의 고수는 매우 아쉬웠다.
오늘은 식목일이다. 작년 식목일에는 벌목을 했었고, 제작년에는 참치를 그렸었다. 올해는 깨를 심어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어나 보니 해가 져 있었다. 그래서 지난번 고수를 심었던 기억을 오늘로 바꾸기로 했다. 역시 착각은 모든 것을 사실로 만들어 주는 치트 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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