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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

공중전화 20.3.13.

   공중전화는 핸드폰이 보급된 20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매우 느린 속도로 죽음을 맞고 있다. 손가락 끝부터 심장을 향해 타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공중전화는 죽음을 감각하고 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의 종류보다 살았었던 생명체가 훨씬 많듯이, 사물 또한 사용하고 있는 것보다 죽은 것들이 훨씬 많다. 공중전화의 자신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처절하고 비인간적인 죽음은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군인도, 초등학생도 핸드폰을 사용하는 지금, 더 이상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공중전화는 어째서 여전히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혹은 공중전화는 그 자리를 지키며 그대로 죽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사물이 죽어버렸음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경우가 있다. 경복궁이 그 예시이다. 시대의 급격한 변화로 사라지지 못했거나, 혹은 상징적 묘비가 되어버린 경우이다. 공중전화는 시대의 급격한 변화로 사라지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진짜 공중전화가 필요한 때가 있을까. 너무 빠른 변화에 철거되지 못한 유물이 되어버린 걸까. 

   우리가 모르는 새에 당장에 지금에도 수많은 사물들은 죽어가고 있다. 어쩌면 사물이 죽는 것은 그 사물이 현생 인류의 사용을 담당하는 뇌 속에서 자리를 잃고 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공중전화에 대한 나의 심상은 유년기와 청소년기, 그리고 현재 모두 다른 양태이다. 이 변화한 심상의 흐름이 내가 공중전화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이다. 내 뇌 속에서 오늘의 글을 쓰기 직전까지 공중전화는 불투명도 5%의 유령에 불과했다. 죽은 사물을 검색하기 전까지 공중전화는 내게서 진짜로 거의 죽어있었다. 사물의 죽음은 인류의 사망원인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원인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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