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외기 위에 종이상자를 올려두면 전기세를 조금 아낄 수 있다는 민간요법을 들었다. 실외기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은 보통 여름의 일이다. 뜨거운 여름에 골목에서 더 뜨거운 바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실외기의 역할이다.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실외기는 냉방을 사용할 시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 그렇다면 난방을 사용할 땐 차가운 바람이 나올까.
실외기는 온난화의 실존을 가장 가까이서 체감하게 만들어주는 사물이다. 한여름, 실외기의 뜨거운 바람에 쐬이면, 우리가 정말 온실을 만들고 있구나라는 상상을 자아낸다. 그럼에도 우린 어쩔 수 없이 실외기를 돌릴 수밖에 없다. 냉방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몸은 집에서 수비드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 날씨는 점점 더 더워지고, 우린 뜨거운 바람을 계속해서 배출한다. 확실히 연신내보다 홍대가 더 뜨겁고, 홍대보다 이태원이 더 뜨겁다. 거리에 실외기는 노상 방뇨하듯 골목 쪽에 숨겨져 있다. 종종 이태원에서 골목을 지나갈 때면 골목에서 뜨거운 열기가 흘러넘치는 것을 느낀다. 그런 골목엔 언제나 실외기가 열 개 정도 설치되어있다.
실외기는 결국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혹은 '냉방 돌려막기'의 이미지를 준다. 실외기는 인간의 보편적 성질에 악한 것은 자신의 눈에 안 보이게 은폐하면 악하지 않은 것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한다는 것의 증거일까. 그리고 더 이상 은폐가 불가능해질 때 비로소 깨달은 척하는 것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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